아마도 학창시절에 한두번 코피를 흘려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소아 환자들을 데려 오시는 많은 어머님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가 `코피를 자주 흘린다’입니다. 사실 저도 중학교 시절에 코피를 많이 흘려 온갖 치료를 다 받아 보고, 또 연근이 좋다 하여 생연근 뿌리를 갈아 매일 아침마다 곤혹스럽게 먹기도 하였습니다.
코피는 좌우 비강(콧구멍)을 나누고 있는 콧속의 물렁뼈인 비중격 앞쪽의 혈관들이 충격 등의 이유로 터져서 발생하는데, 비점막 혈관 분포의 특징은 혈관이 비중격의 앞쪽에 집중하여 그물 같은 망을 형성하고 이곳은 쉽게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이어서 어린이의 경우 대부분 이곳에서 출혈하게 됩니다. 성인인 경우엔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와 같은 순환기 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많으며, 신장 질환이나 만성간질환, 오슬러씨병(유전성 혈관질환)인 경우에도 코피를 일으킵니다.
겨울철에 코피가 많이 나는 또 다른 이유는 감기 때문인데 감기에 걸려 코에 염증이 생기면 점막이 붓고 충혈 되기 때문에 작은 자극에도 쉽게 코피가 납니다. 앨러지성 비염인 경우나 비중격이 휘어진 경우에도 코피가 잘 납니다. 호흡시 공기가 일직선으로 들락거려야 하는데, 비중격이 삐뚤어지면 코로 들어가는 바람이 한 곳만 마찰하여 그 곳에 집중되어 있는 점막이 손상되고 혈관이 터지게 됩니다.
한의학에서는 코피를 뉵혈(?)이라고 하는데, 황제내경에서는 “비장의 열이 간으로 옮겨가면 잘 놀라게 되어 코피가 나온다. 그리고 봄에는 나쁜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숨이 차고 기침이 잘 날 뿐 아니라 열이 나고 잘 놀라서 코피가 터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중국 금원시대의 의학자인 주단계는 “코피는 열에 의한 것이므로 혈액의 열을 내려주는 것이 코피를 치료하는 기본”이라고 했습니다.
‘뉵혈’은 피가 부족하여 오장육부에 무리가 가면 허열이 생기고 이것이 심폐의 위로 올라가서 발생한다고 보며, 상체의 열을 풀어주는 방법을 씁니다. 따라서 열을 풀어주는 보명생지황, 서각지황탕, 삼화탕 등을 쓰며 간단히 연근즙이나 생지황즙, 측백엽 다린 것을 쓰기도 합니다.
또 다른 원인으로 비주통섭이라 하여, 비는 소화기를 가리키고 통섭은 잡아준다는 말입니다. 소화기를 통해 음식물이 소화, 흡수되어 그 기운으로 오장의 활동이 이루어져 사람이 살아가고, 그 충만한 기운이 혈액의 누설을 막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학생들이 무리하게 공부하게 되면 체력이 소모되어 혈관안에 혈액을 잡아두지 못하고 밖으로 배출하게 되는데, 체력이 소모되어 생리혈을 많이 흘리게 되는 것도 같은 원인입니다. 이때에는 기를 보하여 기가 혈을 잡아 주어 혈관 안으로 혈액이 흐르도록 보중익기탕이나 귀비탕으로 치료합니다.
이와 같이 대체로 코피는 허약, 피로, 열성체질에서 잘 생기는데, 이를 회복시켜주는 처방에 지혈약을 1~2가지 가미하여 좋은 효과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민간요법으로는 연근이 수렴하는 성질이 있어서 지혈작용을 하고, 어혈(묵은 피)을 풀어주므로, 30-35g을 1회 분량으로 죽같이 고아서 하루 2-3회씩 4-5일간 먹으면 좋습니다. 제채라고도 하는 냉이는 열을 식히고 지혈작용과 혈압강하 작용이 있어 신선한 냉이 한줌을 끓는 물에 2-3시간 우려서 하루 3회 복용하고, 하루 9-15g을 달여 먹습니다. 부추뿌리 250g을 생즙내어 하루 3회 식간에 먹거나, 뿌리, 줄기, 잎의 모든 부분은 25-30g 또는 뿌리 15-20g을 1회분 기준으로 달여서 하루 2-3회씩 3-4일동안 복용하기도 합니다.(213)487-0150
조선혜 <동국로얄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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