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하잇츠에 산다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스토리아에 살고 있었고 잿슨하잇츠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었다.누군가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 잿슨하잇츠는 사람이 살기에 위험한 지역으로 갱들과 마약 범죄율이 높다 “ 고. 그런데 부동산을 통해 우연히 잭슨하잇츠에 있는 아파트를 보러오게 되었다.
74가 지하철역에 내리자 마자 나의 몸과 마음은 자동적으로 위험에 대비하는 자세로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과 차들, 소음, 그리고 머리위로 달리는 7번 전철, 이리저리 갈라진 길 때문에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복잡한 거리를 빠져나오면서 루즈벨트에 있는 한국 수퍼와 한국 식당의 간판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마음의 경계는 풀리기 시작했다.73가 인디언 거리를 지나 35애비뉴로 오자 복잡한 지하철역 주변과는 달리 많은 나무와 시골 같은 조용함은 아파트를 보기도 전에 이사 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 부동산이 보여주는 아파트가 스튜디오였지만 천정이 높고 맨하탄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보여 첫눈에 반해 바로 계약을 했다.잭슨하잇츠에 이사 온 후 나의 삶이 바뀌었듯이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은 나의 전공인 그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플러싱과 함께 뉴욕한인 이민자의 초기정착지라고 할 수 있는 퀸즈 루즈벨트 지역의 한인타운이 크게 변모하였다. 초기에는 주민들이 주로 백인이었으나 1960년도부터 이민법이 바뀌면서 많은 이민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곳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한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통이 편하다보니 자연히 초기 한인 이민자의 정착지가 되었다. 그 바람에 루즈벨트 애비뉴 지하철역 주변에는 한인상가가 많이 들어섰다. 그러나 20년이 지
난 지금은 그림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한인들이 하나둘씩 더 좋은 주거지로 이주를 하거나 아니면 자녀교육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뒤이어 인디언과 남미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루즈벨트 애비뉴는 한인상가 대신 완전히 남미나라가 통째로 옮겨와 있는 듯 영어가 필요 없는 거리가 되었으며 73가와 74가는 리털 인디안으로 유명해지면서 주말이 되면 각주에서 인디언 들이 몰려오는 명소로 바뀌었다.
이제 잭슨하잇츠도 한인의 전성시대는 가고 루즈벨트애비뉴에는 한인 역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몇 개의 상점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들 중 하나인 나래 비디오에 들려 주인 아주머니에게 그 가게를 얼마동안 했느냐고 물었더니 약 10년 정도 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10년 전과 지금의 이 곳 한인상가의 달라진 점을 물었다. 그랬더니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수퍼, 비디오가게, 식당 등 이 지역에 한인 상가가 아주 많았다”고 대답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또 20년 전 까지만해도 한인이 플러싱 보다 이 지역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들이 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자리 잡았다가 학군이 좋은 롱아일랜드 또는 베이사이드 혹은 뉴저지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이어 옛날의 전성시대가 그리운지 불쑥 플러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제 플러싱이 옛날의 여기처럼 바뀌었죠. 노던 블러버드가 한인상가로 바뀌었다죠” 이제 한인의 그림자도 시간의 발자취에 묻히면서 잭슨하잇츠는 다민족의 지도에 한 점으로 그려질 뿐이다.잿슨하잇츠는 뉴욕시의 퀸즈에 속한 동네로 세계에서 가장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는 동네이다. 주를 이루는 민족그룹은 크게 나누어 아시아, 남미, 그리고 오래전부터 이민해서 살아오던 유럽의 자손들로 구성되어 있다. 1900년 전에는 잿슨하잇츠란 동네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곳은 완전히 농장지역이었다.
잭슨하잇츠란 이름은 1924년 엘머스트로부터 구별하기 위해 그 당시 헌터포인트와 플러싱 턴파크 회사의 사장인 잔 잭슨(John Jackson)의 이름에서 잭슨을 따왔으며 하잇츠(Height)는 이 지역이 인접지역보다 약간 올라왔으므로 하잇츠란 이름을 붙여 잭슨하잇츠(Jackson heights)란 이름이 만들어 졌다.1914년 처음으로 Laurel Court가 지어졌으며 1917년 맨하탄으로 가는 루즈벨트 애비뉴의 지하철이 생기자 퀸즈 보로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주거지로 이곳을 정했다.1920년 퀸즈 보로 코퍼레이션은 노던 불러버드와 루즈벨트 사이 70가부터 92가까지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잿슨하잇츠의 주거단지가 탄생되었다.
개발업자 맥도갈(macdougall) 은 1914년 유럽여행 후 garden city movement의 영향을 받아 잭슨하잇츠에 지어지는 모든 주거단지는 가든을 포함하도록 했다. 그래서 잿슨 하잇츠의 주거지는 길에 오래된 고목이 많고 나무가 우거지고 대부분의 아파트는 작은 공원 같은 정원을 갖
추고 있으며 가든이 있는 아파트가 많은 곳이 잭슨하잇츠다. 잿슨하잇츠의 가든 아파트는 주로 1920년과 1929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개발이 되었다.
1988년 잿슨하잇츠에 잿슨하잇츠 비우티피베이션그룹이 결성되어 이들의 노력으로 1993년 36불럭을 landmarks preservation commission으로부터 역사적 지역보존지역으로 승인받는데 공헌을 했다. 대부분의 잭슨하잇츠는 국가의 역사보존지역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뉴욕시 역사적 지역보존 지역으로 등록된 반 정도가 잭슨하잇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사제보 917-669-5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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