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를 주인공으로 한 스토리는 문학과 함께 영화로도 자주 다루어지고 있다. 사진은 70대의 노배우와 젊은 여성의 관계를 다룬 영화 ‘비너스’의 한 장면. 피터 오툴과 조디 위태커가 출연했다.
작가와 독자 따라 주인공도 함께 노령화·미 출판계의 ‘시대정신’
50대 이후 사랑과 죽음·고령부모 돌보는 중년의 일상 등이 소재
“난 내가 늙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안했습니다. 우리 세대가 그랬지요, 마치 우린 불멸의 젊음을 누릴 것으로 믿었으니까요” 이제 60대를 향해가는 50대의 북디자이너 C.S. 리처드슨은 말한다. 그는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다. 나이는 그 전 세대나 마찬가지로 ‘노령화’되어가지만 자신들의 60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젊고 활기차고, 경제력 있는’ 자신들이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 자리를 양보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당당한 요구는 문학 속에서 확실히 반영되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들도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7,800만명의 베이비부머들이 60세에 접어든 지난 해 이후 나이 든(늙었다는 표현은 삼가야 한다) 주인공과 황혼기 삶의 문제를 주제로 한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생활의 베이비붐세대들이 당면하는 사랑과 죽음, 병든 고령의 부모를 돌보아야 하는 병든 중·노년 자녀들의 갈등 등이 단골 소재인데 이런 소설책의 활자는 보통보다 훨씬 큰 글씨체다. 젊은 생각과는 달리 ‘노안’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이런 현상은 현대문학이 처한 환경에선 우려되는 측면도 있지만 미 출판계의 엄연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 미국의 가장 왕성한 독자층은 50대 이후 연령층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자층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그들이 읽는 책속의 주인공들도 ‘노령화’ 되어간다. 그리고 “작가도 함께 늙어가고 있지요”라고 출판사 하퍼콜린스 월드와이드의 제인 프리드먼 회장은 말한다. “실제로 미국이 나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지요…그저 트렌드가 아닙니다, 난 이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소설 속엔 나이 들어가고 있는 이 세대가 동질성을 갖고 공감할 수 있는 주인공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모두 큰 글씨체로 인쇄될 겁니다”라고 프리드먼 회장은 말한다.
1년전 프리드먼 회장의 출판사는 하퍼럭스라는 방계부서를 선보였다.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한 큰 글씨체 서적출판 부서다. 캘스테이트 도서관은 ‘50대 이후의 삶 : 공립 도서관과 베이비부머들’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활동적인 노년층’ 독자들을 위한 전국의 도서관 시스템 개선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들 소설 속엔 노령화에 따른 일상의 딜레마들이 다양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필립 로스 작 ‘퇴장하는 유령’의 주인공 71세의 네이던 주커만은 전립선암과 성불능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앨런 초우스 작 ‘불꽃’에서 지나 모건은 갱년기와 남편의 죽음을 한꺼번에 겪고 있으며 작가 앨리스 시볼드는 ‘거의 달과 같아’에서 88세의 노모를 돌보고 있는 48세 딸의 애증을 그리고 있다. 또 틴에이저의 섹스등을 즐겨 다루던 작가 팀 샌들린(57)은 83세의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양로병원에 드나들며 관찰한 것을 토대로 요양원에서 늙어가는 병든 히피의 삶을 다룬 ‘지미 헨드릭스 80이 되다’라는 소설을 탈고했다. 리처드슨은 ‘알파벳의 끝’이란 작품에서 30일의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50대의 런던거주 한 남자가 암스텔담에서 잔지바까지 자신이 평소 가보고 싶었던 세계 여러 지역을 알파벳 순으로 방문하는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
베이비부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예전의 노년층 소설과 다른 것은 훨씬 낙관적이라는 점이이다. 노령의 고통이 경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실과 사랑이 균형을 이룬다.
애정과 성에 대한 표현도 대담해졌다. ‘마이클 톨리버의 삶’에선 노년의 톨리버가 젊은 애인 및 죽어가는 어머니의 단골 미용사와 함께 섹스를 하는 장면도 묘사된다. 71세의 작가 래리 맥머리의 소설은 빼놓지 않고 읽는다는 67세의 애독자 로버트 코터는 “그의 최신작 ‘불이 꺼졌을 때’도 물론 읽었지요. 그런데 내 딸들에게 보여주진 못하겠어요”라고 말한다. 그 작품은 리뷰에서 ‘노인들을 위한 포르노’란 평을 받았을 정도다.
쉽지않은 테마는 로맨스다. 시들어가는 외모로 ‘이슬 머금은 눈동자의 처녀와 구릿빛 강인한 근육의 청년’의 전유물이었던 로맨스의 영역을 차지하기란 아무래도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의 나이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젊은이들의 사랑만 담고있는 로맨스 소설에 대해 ‘연령차별’이라고 항의하는 독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으니 이 분야에도 베이비부머들의 입김이 강해질 날이 멀지않은 듯 보인다.
늙음과 마주선 베이비부머
그 사랑과 상실의 표현
최근 나온 미국의 작품 속에서 처음으로 늙음과 마주 선 주인공들의 느낌을 표현한 몇 장면을 발췌한다.
- “…자신의 건강이 무너지고 몸이 위협을 받고있다고 느낀 것은 그가 불과 60대였을 때였다. 그는 세 번 결혼했고 애인들과 자녀들과 그리고 상당한 성공을 거둔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죽음이 그의 삶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듯했다” - 필립 로스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난 단지 한 번의 장례식엘 못갔을 뿐이야. 요즘엔 가야할 장례식이 항상 있거든. 마치 버스같지. 하나를 놓치면 금방 다음 것이 오니까” - 로런스 블록의 “모든 꽃들은 죽어간다” 중에서
-“그런데 왜 노인들이 사랑에 빠지는 걸까? 왜 계속해서 사랑을 하는 걸까? 사랑의 감정은 인간에겐 너무 중요해서 분만의 고통처럼 엄청난거야. 사랑을 지속하는 것은 의지의 행동이라 할 수 있어. 신사의 게임이지” - 애니 딜라드의 ‘산사나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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