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친분… 한때 ‘부적절 관계’ 소문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BBK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20일 LA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다가 돌연 잠적한 김경준(41)씨의 누나 에리카 김(43·한국명 김미혜)씨와 이 후보와의 악연은 지난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던 이 후보는 1994년 4월 LA에 있는 한 한인교회에 신앙 간증을 하러 왔다가 이동연 한미신용정보 회장의 소개로 김씨를 처음 만나게 됐다. 이 회장은 “성공한 1.5세나 2세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고 이 후보와 김씨가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김씨는 당시 명문대를 나온 성공한 1.5세 변호사로 LA 한인사회는 물론 한국 내에도 많이 알려졌었다. 이 후보를 처음 만난 다음해인 1995년 서울 힐튼호텔에서 ‘나는 언제나 한국인’ 자서전 출판 기념회를 가질 때 이 후보를 비롯한 정치권 인사 200여명이 참석했으며 이 때 이 후보와 함께 축하케익을 자르는 모습을 연출, 두 사람의 친분을 과시했다.
한국 대선 정국의 핵폭탄이 되고 있는 BBK 의혹의 핵심인물인 남동생 김경준(41)씨를 이 후보에게 처음 소개시켜 준 사람도 에리카 김씨로 알려져 있다.
특히 BBK 의혹과 관련, 김씨는 주가조작으로 문제가 된 옵셔널 벤처스의 이사를 맡아 법률자문을 했고 주가 조작에 동원된 마프(MAF) 펀드 이사로도 등재돼 있어 누구보다 이 후보-김경준씨 사이의 관계를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남동생에 이어 한국 대선판을 뒤흔들 제2의 인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로 인해 김씨는 이 후보와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항간에는 김씨와 이 후보가 친분을 맺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소문이 떠돌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후보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집 사람하고 같이 소개를 받고 저녁도 먹고 그랬다”며 “그 후 에리카의 부모가 찾아오기도 했다. 염문관계로 맞추는 것은 너무 안 맞는 것 같다”고 부적절한 관계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김씨 또한 2006년 5월3일 LA 연방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이명박과 로맨틱한 관계였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아니다”(No)라고 답변했고 “성적(sexual) 관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도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에리카 김은…
‘성공한 1.5세’ 한국까지 알려져
‘이명박 후보가 BBK의 실질적 소유자’라고 밝힌 에리카 김(43·한국명 김미혜)은 1974년 10세 때 가족과 함께 도미한 이민 1.5세대로, UCLA 법대 출신의 미국 변호사다.
27세 때부터 변호사를 시작해 2003년 LA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LA한인사회에서 변호사로 꽤 명성을 날렸다.
2000년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한 이 후보에게 동생 김경준씨를 소개한 사람도 에리카 김이었다.
금융사업을 통해 재기를 꿈꾸던 이 후보는 모건 스탠리 등 세계적 투자은행에서 파생상품 거래로 명성을 쌓고 있던 김경준씨와 의기투합, BBK 투자자문을 설립했다.
에리카 김은 동생 김경준씨를 이 후보에게 소개해면서, 이 후보가 김경준씨가 동업한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해 ‘BBK 사건’ 전반을 잘 아는 인물로 꼽힌다.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는 지난 16일 미국 변호사 자격이 정지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캘리포니아주 변호사협회는 홈페이지에 “에리카 김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김씨는 최근 자신의 법률그룹 운영과 관련, 허위 세금보고 서류제출 및 돈세탁 등 총 4개 혐의에 대해 미 연방법원에서 유죄를 인정했으며, 이에 따른 실형이 예상되자 변호사 면허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준은…
‘기록적 수익’한때 월스트릿 화제
한국 대선 정국의 핵폭탄으로 등장한 BBK 전 대표 김경준(41)씨는 6세 때 도미한 1.5세로 명문 코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펜실베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학위를 받은 후 세계적 금융회사인 모건 스탠리에 입사했다.
당시 ‘30대 투자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목을 받았다. 이곳에 근무하면서 파생상품, 특히 아비트리지(차익) 거래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1997년 귀국한 김씨는 살로먼스미스 바니 증권사에서 높은 수익률로 이름을 날렸다.
그해 김씨는 주가지수가 29% 하락하는 동안 75%의 수익률을 냈고,2000년엔 주가지수가 74%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수익률 31%를 기록했다는 일화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김씨는 1999년 4월 BBK라는 투자자문사를 설립했고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2000년 귀국한 이 후보와 각각 30억원을 투자,‘LKe 뱅크’라는 금융지주 회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김씨가 펀드 운용보고서 등을 위ㆍ변조한 사실을 확인하고 BBK의 투자자문업 등록을 취소하면서 두 사람 사이는 틀어졌다.
이 후보는 2001년 4월 LKe 뱅크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김씨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