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떠오르는 그리운 고향의 산천은 화려하다. 한국의 가을은 어디를 바라보아도 아름다운 가을의 색깔로 치장되어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도 계절 속에 젖어든다. 바람에 날리고 뒹굴다가 발에 밟히는 가랑잎은 갈색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고고한 은행잎의 노란색과 타오르는 붉은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그 아름다움은 떠나온 우리들의 마음에 고국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 채운다.
처음 칼리포니아에 왔을 때에는 주로 보이는 Oak 나무와 소나무 때문에 단풍을 구경하지 못하여서 속이 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에 새로 조성되는 많은 주택가의 도시와 길을 따라 심은 여러 가지의 나무들이 가을의 색채를 띄우고 있어서 ‘아, 가을이구나.’하면서 문득 계절의 변화를 확인하기도 한다.
34년 전 이곳으로 이주하여 왔을 때에는, 해마다 가을이 가져다주는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 가슴속을 흐르듯이 지나가는 한 줄기의 외로움. 그 빈 마음이 오로지 단풍을 볼 수가 없다는 불만에서 온다는 것과, 가을이면 가슴 가득히 채우는 것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인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도 세월이 한참이나 지나고 난 후에 드디어 한국의 가을을 보고 온 다음에야 비로소 알게된 것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한국에 널려있는 아름다운 노란색의 은행나무들과 붉은 색의 단풍나무들은 나의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가을의 색깔이었다.
절제하기 힘든 망향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어느 날 우리는 칼리포니아의 가을빛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우리가 느닷없이 만난 것은, June Lake를 감싸듯이 서있는 온통 노란빛으로 빛나는 Aspen의 숲이었다. 그것은 경이로운 느낌을 일으키기도 하고, 청명하기도 하고, 투명하기도 한 노란빛이었는데, 햇빛을 받으면서 잎새들은 끊임없이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정신이 다 몽롱할 지경이었다.
그 나무들은 한국의 미루나무의 잎새를 많이 닮아있었으나 빛깔이 너무나도 선명하여서 한국에서 미루나무가 과연 노란색이었던가 의심이 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Aspen을 ‘사시나무 포플러’라고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노랗고 투명하게 하늘거리고 있었나보다. Aspen이 북미에 널려있는 나무임에도 그 절정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가 있었던 것은 완전히 행운이었노라고 말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이 며칠 동안인 것과 마찬가지로 단풍의 아름다움도 며칠 동안이기 때문이다. 운명처럼 만난 그 날의 노란 단풍을 또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지난달에 방문한 한국에서 무르익어 풍성한 어느 가을날. 나의 사랑스러운 은행잎과 타오르는 단풍나무들을 바라보다가, 내가 느닷없이 떠올린 것은 칼리포니아에 있는 Aspen의 노란 단풍이었다. 절대로 투명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은행잎을 집어들면서 떠오른 느낌. 오랜 세월을 두고 아련하기만 하였던 망향의 꿈속에서 이제는 마침내 깨어날 것만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가을비처럼 촉촉하던 고향. 그리움. 나의 간절한 마음. 그 모든 것이 마침내 나의 정착지 이곳 칼리포니아에서 어느 사이엔가 나도 모르게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34년이라는 세월은 긴 시간이기도 하였으며, 나의 정체성에도 변화를 주는 세월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그리고 내가 사랑하게된 미국. 나는 두 나라 사이에서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의 단풍도 아름답고, 미국의 단풍도 아름답다는 것을 마침내 알아버렸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터득하였음으로.......
이제는 가을이 오면, 나의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리라. 그곳에 나의 마음이 머물고 있음으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