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뉴욕은 늦 시월임에도 햇살이 따가웠다. 30년만에 내린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은 미국의 관문답게 심히 붐볐지만, 청사는 의외로 옛 모습 그대로다. 낡은 대합실이 낯익다. 문득 아련한 옛 생각. 이민 초기, 젊음 하나 밑천으로 내디뎠던 미국은 희망의 신천지였다.
“여기예요?? 선한 웃음을 띤 L 장로님이 손을 흔드신다. 그도 우리와 한날 미국에 왔었다. 처가와 동향 피난민으로 해방촌에 정착, 천막 교회를 세우고 형제처럼 동거동락하던 분이었다. 30대 청년으로 뉴욕에 오셨는데 어느새 이순(耳順)을 넘기셨다. 허나 연륜이 새긴 얼굴의 인자함이 혈육처럼 편하다.
그의 부친은 평양에서 교회를 지키시다가 인민군들에게 총살당하셨다. 모친은 3남매를 안고 내려와 교회에 살다시피 하셨다. 가난한 형편에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셨다. 오직 성경과 기도로만 양육하셨다. 차남인 그는 일찍이 점원부터 시작해 사업에 눈뜨기 시작했다. 그의 성실함은 젊어서부터 교회와 온 시장에 소문이 났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김형 댁에 더러 갔었지만, 두 분의 뉴욕방문이 30년 만이니 참 감개무량합니다??. 그는 우선 우리를 뉴욕교회당으로 안내했다. 이민 오신 다음 해부터 벽돌 한 장씩 손수 세우신 교회였다. 생활이 안정되기도 전에 온 가족들이 매달려 목사님과 함께 지은 교회가 지금은 현대식 건물에 알찬 교회로 성장해있었다. 해후를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댁은 교회에서 지척인 거리에 있었다. 낡고 조그만 콘도였다. 삐걱거리는 이층계단을 올라가니 작은 침실에 아무장식도 없고, 십자가만 걸려있다. 참 검소한 삶이었다. 오랫동안 맨하턴 중심부에서 해 오신 사업이 번창한다고 들었는데.. 혹 불경기를 타는 게 아닌가 염려스러웠다.
30년 전에 올랐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내려오니 장로님이 바로 앞 빌딩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안내하신다. 수십 명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그 옆 쇼룸엔 뉴욕 첨단의 다양한 디자인의 단화(短靴) 수천 켤레가 조명등아래 전시되고 있었다. 한 눈에도 사업의 규모와 역동성이 느껴졌다. 그때서야 사업에 대해 설명하신다.
“이민 와서 십 수년 간 일궈오던 가방도매업이 자금난으로 큰 위기를 맞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고급 실내화만 전문으로 하는 유대인 파트너를 만났습니다. 직감적으로 큰 가능성을 보았지요. 나는 그에게 성경으로 산 사람 - 워너메이커의 경영철학을 보여주며 이를 바탕으로 한 동업을 제의했습니다??
존 워너메이커(Wanamaker)는 1838년에 태어난 미국의 백화점 왕이다. 독실한 신앙인으로 평생 주일학교 교사를 했던 유통업의 귀재였다. 사상 처음 정찰제와 품질보장제를 실시했고 고용인 복지제도를 도입했다. 의료보험, 연금, 그리고 이윤 분배 등을 최초로 실행한 기독실업인 이었다.
“워너메이커처럼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중국에서의 생산, 뉴욕의 첨단 디자인, 그리고 파트너의 탁월한 마케팅능력이 합해져 사업이 몇 년 새 커졌습니다. 투명한 세금보고와 정직하게 쌓아온 신용도 큰 자산이었지요. 동부와 서부에 물류 창고를 마련한 뒤론 판매규모가 수천만 달러단위로 뛰었지요.??
총수익의 10%를 빈민 선교에 쓴다고 하셨다. 아프리카, 남미, 캄보디아 등, 당신이 몇 주씩 직접 사역지에 가서 돕고 오신다. 그 중에서도 당신이 피난통에 배 골며 자주 지나쳤던 영등포 시장께 노숙자들을 위한 쪽방 교회를 돕는 보람이 참 크다고 하셨다.
“부족한 제게 워너메이커처럼 성경처럼 살고도 성공한 멘토를 보여 주셔서 감사하지요.?? 순교하신 부친의 유업을 이은 한국인 후예들이 뉴욕 한복판에서 미국 청교도의 얼을 이어가고 있었다. 축복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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