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째 날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반가운 비가 어제 종일 내렸다. 오늘 아침에 해가 뜨는 가 했더니 비가 오락가락한다. 중국박물관 모임에 가자며 미국인 친구가 초청장을 보내와 참석해야 했다.
바쁜 12월의 토요일이라서인지 주차장도 만원이었다. 운이 좋게도 떠나는 자동차가 바로 내 앞에서 시동을 걸고 있어 금방 차를 주차했다. 빌딩을 빠져나와 낯선 길에 서서 방향을 더듬어 보았다.
아직도 매끄럽지 않은 문화와 언어의 이질감 때문일까. 동양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 곳을 걸어갈 때면 조금 긴장이 된다. 촌티가 나지 않게 중국 박물관을 향하여 당당하게 걷는다. 다행히 소문이 난 시가지라 낮에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걸어서 다니는 곳이다.
나를 초청한 W교수는 갑자기 출장을 떠났기에 나 홀로 박물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수십 명의 손님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한인이라니 반겨준다. 지난해부터 후원회원이 된다는 것이 이제야 등록했다. 같은 아시아 문화권에 사는 사람이기에 작지만 힘을 보태고 싶었다. 예술에는 국가적, 종교적인 장벽이 없기에다. 오직 인류를 위한 기쁨과 평화만 존재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매년 자기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알리는 중국인들의 단합된 모습과 훌륭한 행사를 보면서 한인으로서 나는 늘 배우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생기면 우리의 아름다운 한국 문화와 예술을 나도 그들에게 전하려고 한다.
진열장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마카오 사람이 만들었다는 여러 가지 원석의 아름다운 목걸이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물관은 오래 전 뜻을 함께한 지혜로운 중국인들이 한푼 두푼 모아 미래를 내려다보고 마련한 것이다. 지금 샌디에고의 유명한 다운타운 개스 램프 근처인 이곳은 금싸라기 땅이 되어 있다.
박물관 근처에는 오래 된 중국이민자들이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노안의 관장이 ‘박물관 10년 회고록’을 내 손에 쥐어준다. 손이 큰 중국인들이 해마다 박물관 운영을 위해 몫 돈을 기부하기에 기반이 튼튼한 듯했다. 아시아를 사랑하는 여러 백인들까지 후원자이다. 바로 길 건너에는 중국공사관도 있었다. 누군가가 중국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언제나 명당이라더니.
공교롭게도 그날은 샌디에고의 한인회장 선거 날 이었다. 우리 가족이 이곳에 20년을 살았지만 투표권이 없어 선거에 참여 할 수 없었다. 이상한 정관 때문이었다.
우리에겐 미 주류사회에서 주는 이익을 찾고 소수민족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헌신적인 봉사자를 필요한데 한인회를 둘러싸고 곪아 터져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국박물관 행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언제면 조용히 한인사회의 이익을 위해 진심으로 봉사를 할 사람들이 나서줄까. 중국교포들은 세상과 후손을 위해 무엇인가를 실행하고 있었다. 반가운 빗소리를 들으면서도 나의 가슴 속에는 슬픈 비가 마구 쏟아져 내리던 고독한 오후였다.
최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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