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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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영혼을 일곱 번 질책했다/ 첫 번째는 약한 자를 착취해 나를 강하게 만들려고 했던 때였다/ 두 번째는 불구자 앞에서 절름발이인척 했을 때였다/ 세 번째는 기회가 있음에도 어려운 일보다는 쉬운 일을 택했을 때였다/ 네 번째는 내가 잘못하고도 남들은 더 나쁘다고 자위했을 때였다/ 다섯 번째는 두려움 때문에 순해졌다가 강하다고 끝까지 강변했을 때이다/ 여섯 번째는 삶의 진창을 피하기 위해 내 옷자락을 걷어 올렸을 때이다/ 일곱 번째는 신을 찬양하면서 인간의 덕을 노래한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일곱 번의 질책 - 칼리 지브란)
또 한해가 간다. 20세기의 명상 시인, 칼리 지브란의 한편 시가 세모(歲暮)에 던지는 질책이 크다. 이 글에 감상 평을 단 어느 작가는 아예 엎드려 고백하고 있다. 오! 그렇습니다. 시인이여, 당신은 신의 거울을 가졌습니다. 접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칼리 지브란의 질책은 다름 아닌 우리 모두의 심장으로 향해있다. 신앙을 가졌다면서 세상의 음지를 애써 외면하고 살아온 나. 혹여 흙물이 튈까 옷자락을 걷고 까치발 디디며 삶의 진창을 피해 살아온 부끄러움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보잘것없는 재주라도 열심히 나누었으면, 한푼이라도 정성껏 베풀었으면 덜 외로워했을 쪽방 독거노인들과 굶주린 고아들과 무숙자들의 퀭한 눈동자들이 마치 조명등처럼 한데 모아져서 나를 주시하고 있다.
언제 내가 남을 착취한 적이 있냐고 항변해 본다. 허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이웃의 존엄성을 착취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남의 진의를 왜곡하고, 폄하하고, 인격을 무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칼리 지브란은 불구자들 앞에서 다리 저는 시늉을 해 보였던 가진 자들의 위선을 더 참지 못하고 있다. 몰인정한 흘대와 값싼 동정사이를 오가며 눈가림으로 베풀어온 거짓사랑을 질타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도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완벽하진 못했지만 남 속이지 않고, 폐 끼치지 않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 세월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표리부동한 이웃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크다. 오랜 친구라고 믿어왔던 사람으로부터 당한 배신감에 절망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인간들에게 정을 주었던 자신을 미워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이웃 관계에서의 모순은 또 있다. 우리는 아예 얼굴조차 모르는 타인들에겐 관대하면서도, 가까이 사는 이웃들에겐 참 모질다. 왜 그럴까? 같은 공동체 안에서 한 식구처럼 십 수년 간 한솥밥을 먹었는데도 아주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고 원수처럼 미워한다. 형제를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성구를 함께 읽고 난 뒤 성경을 덮기가 무섭게 혀의 비수를 꼽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칼리 지브란의 질타는 준엄하다. 사람은 오십보 백보란 게다. 혹여 내 눈의 대들보보다 남의 눈의 티끌이 더 크다고 강변하는 게 아닌가. 우리 속의 열등감이나 위선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오히려 큰소리로 억지나 부리지 않는지 되새겨 보라고 이른다.
거듭 시를 음미해 보면, 칼리 지브란은 일곱 번 째 결구(結句)에 속마음을 두고 있음이 느껴진다. 신(神)과 인간과의 관계. 일곱에 일흔 번이라도 질책 받아야할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인간의 한계를 두 눈 똑바로 뜨고 직시하라는 충심 어린 충고로 들린다. 조물주 앞에 인간의 덕 없음을 참회하고 내 영혼을 그에게 온전히 맡기라는 사랑의 메세지로도 들린다. 한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내 영혼으로 향한 시인의 통렬한 질책이 신의 부드러운 구원의 음성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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