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하루 전까지 아이오와는 최고 기온이 섭씨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가 계속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한 표를 호소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은 눈물겨웠다. 이들의 간청에 못 이겨 아이오와의 주도 디모인 인근 소도시 에임스에 산지 10여년 만에 처음 3일 투표장에 가봤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아이오와 투표는 종이에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라 코커스라 부르는 모임에 나가 몸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도록 돼 있다. 낮에는 사람들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저녁 6시 반부터 등록이 시작되며 7시에서 8시 사이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코너에 가 서 있어야 한다. 여러 차례 사람 수를 세어 이상이 없으면 그것이 곧 선거 결과가 된다. 한번 들어가면 끝날 때까지는 나오지 못한다.
내가 간 에임스 코커스는 자그마한 동네 중학교에서 열렸는데 추위에도 불구, 500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다. 아이오와에서 파킹장이 없어 고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렸음에도 등록과 표결은 질서정연하고 물 흐르듯 진행됐다. 처음 투표에 참가한 사람도 많았음에도 모두가 전문가들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고 새삼 미국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얼마나 잘 돼 있나를 실감했다.
투표하러 온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았다. 어린아이를 안고 온 가정주부부터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손을 잡고 찾아온 중년 부부에 이르기까지 아이오와 코커스는 어른만의 행사가 아니라 온 가족의 동네 잔치였다. 분위기도 치열했던 캠페인과는 딴판으로 화기애애했다.
어려서부터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이 커서 투표를 하기 때문에 순조롭게 선거가 진행되고 진 자가 이긴 자에게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란 사람들이 툭 하면 단상을 점거하느라 몸싸움을 하고 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되는 어느 나라 국회의원들은 꼭 한 번 와 봐야 할 자리였다.
흥미로운 것은 힐러리 지지자들 가운데는 중년 백인 여성이 많았고 오바마 쪽에는 젊은 남녀 대학생, 그리고 흑인들이 압도적으로 다수였다는 점이다. 전체 주 인구의 1%밖에 안 되는 흑인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은 그날 처음 봤다. 힐러리 지지자들이 모인 곳에는 공짜 샌드위치와 스낵 등이 쌓여 있어 재정이 넉넉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임스 코커스 결과는 2대 1로 오바마의 압승이었다. 에드워즈 지지자들은 처음 유효 표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 지지율인 15%를 확보하지 못해 무효로 처리될 뻔했으나 그 중 한 명이 간곡히 호소, 군소 후보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는데 성공해 간신히 15%는 넘겼다. 그러나 그렇게 확보한 대의원 수는 오바마나 힐러리에 비해서는 미미했다.
코커스에서는 처음 누구를 찍겠다고 마음먹고 와도 주위 분위기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모인 자리에서도 서로 자기 쪽으로 오라고 설득하기도 한다. 나도 처음에는 힐러리를 생각했으나 결국 오바마 쪽에 섰다. 오바마 팀이 훨씬 더 활기차고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미국은 인종 갈등, 빈부격차 등 숱한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로 남아 있다. 혹한을 무릅쓰고 미국을 보다 나은 나라로 만들 아무개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빙판을 돌아다닌 자원 봉사자들, 그 후보에 표를 주기 위해 저녁 때 아이 손을 잡고 코커스 현장으로 나온 주부들, 보수적인 백인들이 대다수인 아이오와에서 젊은 흑인이 민주당 경선 1등을 했다는 사실 등이 미국의 진정한 힘이 어디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전 처음 참가한 아이오와 코커스는 미국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에 대한 훌륭한 학습 체험이었다.
민경조
아이오와 주립대 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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