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아가라 가는 길
뉴욕 북서쪽은 내겐 미지의 프론티어였다. 단풍과 폭포의 세상. 메마른 상온(常溫)의 미 서부에 오래 살면서, 가을이 올 때마다 북녘의 단풍 벨트를 달리고 싶었다. 명문 코넬대학이 있는 이타카에서 시라큐스를 거쳐 오대호까지 그 숲을 지나며 가을나무들의 변신을 엿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길 끝에서 만나는 나이아가라 폭포. 그 웅대한 물벽을 박차고 오르는 오색무지개도 바라보고 싶었다.
뉴욕의 L님 부부와 함께 떠난다. 객들이 올 때마다 수십 번 오르셨을 텐데 마치 초행길처럼 즐거워하신다. 「옛 친구와 함께 가는 길은 어릴 적 소풍 길처럼 설레지요. 폭포가 뿜어내는 젊은 힘과 황혼 녘 단풍 숲의 조화는 볼 때마다 영감을 줍니다.」화폭 같은 숲 사이로 뻗은 하이웨이 17번과 91번을 번갈아 타고 달린다.
여름날 푸르던 젊음을 열매에게 다 내어주고 떠나가는 나뭇잎. 그들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창문을 열고 달린다. 바람결에 간간이 들리는 숲의 노래는 비껴 내리는 가을햇살만큼이나 소슬하다. 바람이 채근하면 미련 없이 손을 놓아버리는 단풍의 초연함. 나무는 한 계절만 지나도 이리 철이 드는 것일까? 그런데 지천명 나이에도 잔뜩 움켜쥐고 살아가는 나는 대체 누구인가?
어느 듯, 버팔로 시(市)다. 오대호 이리(Erie)호의 동쪽 가장자리. 190번 도로를 바꿔 타고 나이아가라 강을 따라 오르니 멀리 솟구치는 물보라가 보인다. 굉음과 함께 비경을 드러낸 나이아가라 폭포는 마치 아이맥스 영화 속의 파노라마처럼 우리의 숨을 멈추게 한다. 슈퍼맨 영화에서 보던 그 장관이다. 아메리칸 폭포 끝에서 캐나다령의 말발굽을 닮은 홀스슈 폭포까지의 폭은 거의 1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했다. 폭포의 높이가 176피트로 20층 건물과 맞먹는다.
인디안 전설에 나오는 「물안개 소녀(Maid of the Mist)」란 이름의 동력선을 타고 폭포의 중심부까지 나아간다. 비닐 우비를 입고 쏟아지는 물보라를 맞으며 홀스슈 폭포의 바로 밑까지 전진한다. 흰포말이 소용돌이치는 강심에서 올려다보는 폭포는 매초 오륙십만 갤론의 생수를 봇물 붓듯 쏟아낸다. 그 엄청난 유량과 낙차에너지로 인해 몸이 떨린다. 출애굽 때 갈라진 홍해 가운데 들어선 느낌이 이러했을까?
「나이아가라 폭포는 지구역사를 통틀어보면 보면 젊은 편이라지요. 12,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이 지역은 2-3 킬로미터 두께의 빙하로 덮여 있었답니다. 빙하가 녹으면서 오대호가 생성되고, 깊이 패인 온타리오호와 얕은 이리호와의 사이에 거대한 폭포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L형의 설명이다.
오대호엔 지구상 전체 생수의 22퍼센트나 저장돼 있다고 한다. 미전국토를 3미터 깊이 물 속에 잠기게 할만큼 방대한 양이다. 지구상에 한정된 생수는 날이 갈수록 귀해질 게 틀림없다. 올해도 미 중남부 지역이 가뭄에 허덕이면서 호숫물을 나눠 쓰자고 사정했다. 허나 오대호주변 주들은 호수보존을 명분으로 생수의 타주 유출을 아예 법으로 금지한 것이다. 지금은 썬벨트 지역으로 미국인들이 떠나고 있지만 언젠가는 생수가 풍부한 오대호 쪽으로 역이주할 것을 믿고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안 변하는 게 없는 듯 싶다. 영원할 것 같은 나이아가라 폭포도 약한 사암층 지반이 계속 무너져내려 매년 1-3 인치씩 후진한다는 것이다. 지난 3백년 동안 약 300미터 이상 상류 쪽으로 거꾸로 물러섰다.
「김형, 한국 중년 관광객들이 이곳에 오면 나이야 가라! 하고 소리칩니다. 더 이상 나이 먹고싶지 않다는 애교스런 절규이죠. 헌데 실제로 매년 거꾸로 올라가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생태를 볼 때 과학적 근거가 있는 외침이지요.」 하하 L형의 웃음이 퍼지는 물보라위로 손에 잡힐 듯 쌍무지개가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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