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10일 국보 제1호 서울특별시 남대문로 4가 소재, 남대문(원명 숭례문)이 한 사회 불만자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었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태조는 무학 대사의 건의에 따라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고 1396년 1월 도성 축조를 위해 북쪽의 백악, 동쪽의 낙산, 남쪽의 남산, 서쪽의 인왕산을 잇는 도성 17km를 쌓게 했다.
동시에 성 안팎을 통하는 출입문으로 북문인 숙정문, 동대문인 흥인문, 남대문인 숭례문, 서대문인 돈의문 등 4대문을 1398년 2월에 준공하였다. 이 4대문은 종각에 큰 종을 매달아 하루 2번 쳤는데 새벽 4시에 통행금지의 해지, 저녁 10시에 통행금지로 종소리에 따라 열고 닫았다고 한다. 이번에 잿더미가 된 남대문은 세종 29년 1447년에 개축한 것으로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남대문의 하층은 화강암으로 구축했고, 중앙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紅藝門)을 만들었다.
액면(額面)의 숭례문이라는 한자는 양녕대군의 필적이며 세로로 쓴 것은 경복궁을 마주보는 관악산의 화산(火山)에 대하여 불을 막는다는 풍수설에 의한 것이라 한다. 도성 축조공사를 위해 경상, 전라, 강원, 평양, 함경 등지에서 19만7,400명의 장정이 동원되었다.
본래 남대문 양쪽에 성벽이 연속되어 있었으나 1908년 길을 만들기 위해 성을 헐어버렸다. 6.25 한국전쟁 때 파괴된 곳을 1956년에 보수하였고 다시 1962년에 전면적인 개축에 착수하였다.
610년 동안 민족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때로는 상처받았던 남대문이 이렇게 후세들의 방심과 무능으로 5시간 만에 잿더미가 되다니 노무현 정권의 말기적 현상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틈만 있으면 균형과 분배를 강조하더니 균형은 깨지고 분배는 격차를 심화시켰다.
언젠가 열린 우리당의 신기남 의장이 LA를 방문, 교민과 만찬 겸 대화를 가진 바 있었다. 필자는 ‘균형발전’을 역설하는 그에게 “균형발전은 지역과 지격간의 균형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를 모든 분야에 골고루 분포되도록 하여야지 지금과 같이 우수 인재가 모두 권력기관으로만 몰린다면 국가라는 배는 한 쪽으로 쏠려 침몰하고 말 것이다. 한국과 같이 정치 기능의 범위가 무한대인 사회에서는 고시에 합격하는 수밖에 없다”라며 열린우리당의 균형발전의 개념을 비판했던 기억이 난다.
민족의 유산인 남대문이 불만을 품은 자의 방화로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니 더 근본적인 것은 한국 정치에서 분배와 반응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즉 부정부패, 부의 편재,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제거하고 분배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게 정책 결정을 통해 응답할 줄 아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박종식 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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