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내가 조용하다. 내가 묻는 말에 별 대답이 없다. 갱년기에 들더니 기분이 우울해진 탓일까? 아니면 가는귀가 먹는 걸까?
퇴근을 하니 아내가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도대체 그녀가 어느 정도 거리에서 못 듣는 걸까? 현관에서 묻는다. 여보, 나 왔어. 아무 대꾸가 없다. 응접실로 나아간다. 냄새가 구수한데 오늘 저녁은 뭐야?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부엌입구까지 다가선다. 좀 속이 탄다. 오늘 맛있는 저녁메뉴는 뭔가? 아내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아니 이렇게 가까이 서도 안 들린단 말인가? 가슴이 미어지듯 아프다. 시집와서 고생만 하다가 이젠 가는귀까지 먹다니.. 난 아내 곁으로 다가가서 등을 다독인다. 오늘따라 유난히 잔등이 앙상해 보인다. 늘 당신에게 고맙소. 오늘 저녁은 뭐지? 그제야 아내가 몸을 획 돌리며 목청을 높인다. 도대체 내가 몇 번이나 칼국수라고 말해야 알아듣겠어요?
이 유머 콩트의 반전(反轉)이 재미있다. 정작 귀먹은 이가 남편인 것처럼 나도 요즘 한쪽 귀가 잘 안 들린다. 평소 건강 하나는 자신하던 터였기에 속으로 실망이 크다. 결혼하고부터 아내는 나를 불사조(不死鳥) 라고 불렀다. 늘 분주하게 쏘다녀도 지칠 줄 모르는 체질인데다가 몸을 혹사해도 아침이면 거뜬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자신 있던 내 몸이 삐걱대기 시작한 것이다. 약골인 아내는 멀쩡한데 나는 청력도, 시력도 약해지더니 요즘은 어깨마저 얼어붙었다. 장년 나이를 의식치 않고 젊은이들처럼 요가며, 역기에다 테니스, 골프까지 몇 년을 계속해 오니 어깨 근육에 무리가 간 게 틀림없다.
요즘 당신 불사조가 불쌍조(?)로 바뀌었어요. 팔도 제대로 못 드니. 게다가 말수까지 부쩍 줄어 도무지 당신 속내를 알 수가 없어요. 연애시절 그렇게 달변이던 당신이 이젠 입에 자물통까지 채웠으니... 아내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넌지시 뼈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진젠코는 ‘왜 남자들은 아내에게 침묵하는가?’ 란 글에서 두어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남자들은 감정 표현에 익숙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화도중 전혀 의도치 않았던 말이나 감정폭발로 낭패를 본 기억 때문에 속내를 잘 내보이지 않게 된 거다. 그래서 남자들은 대화보다 행동을 선호한다. 말없이 아내 차의 엔진 오일을 갈아주거나, 생일 때 꽃다발을 안겨주는 애정표현을 더 편해한다는 말이다.
또 한가지는 가정에 대한 시각차이 때문이란 거다. 남편들에게 가정은 오로지 쉼터이다. 직장에서 시달리다 집에 오면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게 대부분 남자들이다. 마음과는 달리 아내와의 대화보다 TV에 넋을 쏟고 있다.
오십대 낀 세대가 되면서 앞날이 꼭 지금보다 나으리란 보장이 없음을 느낀다. 우리 몸도 삐걱대고 노부모들도 점점 더 쇠약해지는 게 현실이다. 젊었을 땐 항상 내일이 더 나으리란 막연한 희망 속에 살았는데 그 기대가 변하는 게 장년기의 삶이다. 허나 역설적으로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는 깨달음이 어느 때보다 강한 것도 사실이다.
불사조의 추락을 막는 길은 날개 짓뿐이다. 어떤 역풍이 몰아쳐도 날개 짓을 멈추지 않되 지나치지 말자고 다짐한다. 오늘하루를 소중하게 살려면 자물통 채운 입술을 열어 부부가 노래하듯 살아야겠다고 느낀다. 처음처럼 애정표현도 열심히 하면서.. 아내에게만은 영원히 불사조로 남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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