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한국학교 / 김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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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난날들을 추억해 볼때면 활동 사진보다는 한 컷의 사진처럼 장면 장면으로 기억이 날 때가 많다. 아주 어릴 땐 기억이 없다가 네 다섯살때 옆집에 도둑이 들어서 무서웠던 장면, 초등학교 입학식 장면, 지금까지 살았던 집들의 이곳 저곳 모습들, 저녁 먹기 전까지 뛰어 놀던 공터, 여러 친구들 모습과 그들과 있었던 이런 저런 일들, 할아버지 댁에서 지냈던 일, 기뻤던 일, 슬펐던 일, 기억에 남는 일, 잘못해서 후회했던 일, 감동 받았던 일등이 스냅 사진 처럼 스쳐 지나가 듯 생각이 난다. 기억 용량이 정해져 있어서 기억하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기억하고 있는 지, 아니면 반복해서 기억하는 것만 기억하는 지, 아들과 얘기하다보면 내 기억에는 지워진 것들을 아들은 또렷이 기억할 때가 있다.
“어머, 그 때 그런 일이 있었니?”
이렇 듯 어제의 일들이, 지금 일어난 일들이 내일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가고 있는데 미국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추억들을 만들어 주며 살아야 할까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난 서울에서 주로 자랐지만 방학땐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지냈다. 시골 아이들이 검정 고무신을 신던 시절, 핑크 슬리퍼와 예쁜 원피스를 입은 얼굴 하얀 도시얘였던 내가 방학이 끝날 쯤엔 시커멓고 꾀재재한 시골여자얘로 변해있었다. 산으로 들로 쫓아 다니며 맘껏 뛰놀고 냇가에서 물고기 잡던 일, 원두막에서 낮엔 참외 수박 먹으며 놀다가 밤엔 모기장 치고 그 안에서 `전설따라 삼천리’를 들으며 자던 일, 소 몰고 가서 풀 먹이던 일, 아궁이에 불 때며 불이 참 예쁘다고 느꼈던일등, 그 땐 그 일들이 내가 가끔 추억의 갈피를 열 때 생각나게 하는 추억이 될 줄 몰랐다. 하지만 시골에서 지내던 일들은 서울 콘크리트 속 회색 도시에서 살 때 나는 적어도 흙 냄새 나는 넉넉하고 푸근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해준 좋은 추억들이었다.
미국에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치즈 냄새, 피자 냄새 나는 완전 미국화된 미국 아이로 키우는 것보다 그래도 조상이 한국인인데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 역사를 잘 알게 해줘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자긍심있는 아이들로 자랐으면 좋겠다. 꼭 SATII때문이 아니라 세계 여러 글자중 독특하고 과학적인 우리 글자를 익히기 위해서, 미국과 다른 한국학교 생활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 한국학교도 다녀 보게 하고, 한국을 이해하고 알기 위해서 한국도 가끔 방문해서 직접 겪어보게하는등 여러 경험들을 통해 어린 시절 추억을 쌓고 그것이 미국에서 여러 민족과 어울려 살 때 든든한 자양분이되어 우리 아이들이 기죽지않고 한국인의 자부심을 갖고 살게 해줬으면 한다. 우리 부모들도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자주 생각나는 추억으로 어떤 것들을 기억나게 해줄까 한번 쯤은 생각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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