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고층빌딩 가운데 엘리베이터 요금을 받는 곳은 없다. 엘리베이터를 두 번 갈아타는 최고층 콜롬비아 타워(76층, 967피트)도 공짜다. 그런데 고작 60층 높이를 오르내리는 승강기 요금으로 물경 16달러나 받는 곳이 같은 다운타운에 있다. 스페이스 니들이다.
시애틀에 살면서 스페이스 니들을 가보지 않은 한인은 없을 듯하다. 필자도 울며 겨자 먹기로 매년 한두번은 가게 된다. “스페이스 니들 빠진 시애틀관광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방문객들의 성화 때문이다. 덕분에 스페이스 니들은 턱없이 비싼 승강기 요금을 받으면서도 연평균 100만명 이상 끌어들이는 시애틀의 대표적 관광명소 겸 상징물로 군림한다.
그 스페이스 니들이 46살이 됐다. 한인 이민자가 드물었던 1962년, 세계 박람회(World’s Fair)가 시애틀 센터에서 4월21일 개막됐다. 바로 전 날 마지막 세 번째 엘리베이터가 밤샘 설치공사를 끝내고 스페이스 니들의 화룡점안(畵龍點眼)을 이뤘다. 이들 엘리베이터는 박람회가 끝난 10월21일까지 6개월 간 관광객을 하루 평균 2만 명씩 실어 올렸다.
당시 미래형 교통수단의 모델로 건설된 모노레일(1.3마일)이 오래 삐걱대다가 지난해 폐쇄됐고, 역시 최첨단 체육관으로 지은 ‘콜리지엄’(현 키 어리나)도 낡아빠져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수모를 겪는 것과 달리 스페이스 니들은 여전히 독야청청 인기를 누린다.
스페이스 니들이 박람회의 상징으로 발탁된 것은 우연이었다. 에드워드 칼슨 준비위원장이 독일 스투트가르트의 ‘TV 타워’ 꼭대기 식당(400피트)에서 식사하며 눈 아래 펼쳐진 도심경관을 바라보다가 “이거다!”라며 무릎을 쳤다. 그 뒤 박람회 주제인 ‘21세기(Century 21)’에 걸맞게 삼각대에 비행접시를 올려놓은 독특한 디자인이 채택됐고, 매일 24시간 공사가 강행된 끝에 1년이 채 안돼서 미시시피 강 서쪽의 최고층 건물(520피트)이 탄생했다.
날림공사였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레미콘 트럭 467대가 12시간 계속 시멘트를 퍼부어(세계 신기록) 두께 30피트(직경 120피트)의 기초를 다졌다. 그 위에 기둥이 30피트짜리 볼트 72개로 고정됐다. 시속 200마일의 폭풍과 9.5도 강진에 견디도록 설계됐다. 25인승 엘리베이터의 안전운행에 한 개면 충분한 케이블을 7개나 매달았다. 그 케이블이 한꺼번에 모두 끊어져도 승강기는 특수 브레이크 덕분에 궤도에 달라붙어 추락하지 않는다.
스페이스 니들이 세워진지 거의 반세기나 지났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기둥 안에 848개의 층계가 전망대까지 이어져 있다. 뜨거운 여름날엔 첨탑높이가 1인치 가량 늘어나고 시속 10마일의 바람에 전망대가 좌우로 1인치 가량 흔들린다. 최초 공사비는 450만 달러, 2000년 보수공사비는 2,000만 달러였다. 1997년 4월21일 시애틀시의 기념물로 공식 지정됐다. 엘리베이터가 전망대까지 오르는 데 43초(시속 10마일) 걸린다. 그동안 엘비스 프레슬리, 워렌비티, 데미 무어, 존 트래볼타, 멜라니 그리피스, 마이클 더글러스 등 인기스타를 비롯한 전 세계 명사들이 다녀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11세 때인 1966년 교회 성경암송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부상으로 이 곳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게이츠가 그때는 갑부가 아니었겠지만 하늘에 떠 있는 ‘스카이시티’ 레스토랑의 요즘 음식 값은 문자 그대로 하늘만큼 높다. 뉴욕 스테이크가 자그마치 52 달러다. 작년 여름 한 귀빈의 곁다리 손님으로 초대받아 저녁을 먹었는데 6명 식대(와인 포함)가 1,000 달러를 육박했다. 식당 내부가 47분에 한번씩 회전하지 않더라도 음식 값 때문에 눈이 돌 지경이다.
‘스카이시티’ 레스토랑의 본래 이름은 ‘바늘구멍(Eye of the Needle)’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찾아가기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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