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황희연 / 세종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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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높이만큼 높아진 입에, 시선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인지 엉덩이로 문을 열며 들어온 아이는 수업 중임에도 책상에 엎드려 한숨만 쉰다.
이럴 때는 다년간의 경험에 의해 경고보다는 무관심이 최선이다.
「자~, 이 글은 수필가 피천득님의 금아문선에 실린 글로 외동딸 서영이에게 보내는 글이다. 정확하게 소리 내어 잘 읽고, 잘 듣는다. 그럼 이쪽부터 시~작」
한 문단씩 읽어 가고 있는데 엎드려 있던 아이, 「저는 그 종이 못 받았는데요」 하며 부스스 일어나 교재 복사물을 찾는다. 화를 많이 삭인 듯 해 보인다.
교재를 다 읽고 글의 종류를 설명해 주고, 누가 누구에게 쓴 글인가에 대한 질문에 반 학생들은 한결같이 의아해 한다. 왜 편지를 써요?
하기야 이 책이 출판 되었을 때가 반 학생들의 부모님 출생 년도보다 오래 전이니까 시대를 이해 하기 어렵겠지.
쉬는 시간이 되기 무섭게 모두 나가는데 이 아이는 멍하니 앉아 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프롬 갈 생각?」관심을 보이면 털어 놓게 되어 있다. 오늘 아침에 엄마와 싸웠단다. (싸웠다는 표현에 깜짝 놀랐지만) 누가 이겼냐고 물으니 멋쩍게 웃는다.
준비 된 둘째 시간 수업 급 변경, 칠판에 시조 한 수를 적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이 몸이 있었을까 하늘 같은 가 없는 은혜 어디 대어 갚사오리.」
아버지가 딸에게 자상하게 쓴 편지를 읽었고, 부모님의 끝없는 은혜를 노래한 시조 한 수를 읽으며 시작한 둘째 시간에는 부모님께 편지를 쓰도록 했다.
「어머니 날이 오니까 이거 너무 형식적이지 않아요?」하며 수업거부를 한다.
가끔 애용하는 준비된 노래를 들려 준다.
「엄마가 보고플 땐 엄마 사진 꺼내놓고,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엄마가 그리울 땐 엄마 편지 다시 보고, 엄마 내음 느껴지면 눈물이 납니다……」
촌스럽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면서 흥얼거린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분위기 최고조일 때 빨리 감정 정리하여 편지 마무리 하라고 하자, 엄마와 싸웠다는 이 아이, 울면서 하는 말, 「선생님 그 노래는 제발 틀지 말아요」
세대를 막론하고 엄마란 단어는 눈물 샘을 자극하고, 콧등을 시리게 하고, 가슴을 저미게 하나 보다.
흰 종이에 「엄마 미얀해요」만 연거푸 써 놓고 아이는 깊은 반성을 하나보다.
그만」이라고 하자, 아이는 진하게 더 쓴다. 「엄마 살랑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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