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조이 안 /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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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너무 많이 봐서 케이블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구석에 박아 둔 안테나를 다시 꺼내서 꽂았습니다. 그랬더니, HD채널이 잡히는데 한국방송이 두 군데에서나 나오는 겁니다. 채널 잡은 날, 남편하고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24시간 보는데다 공짜입니다. 그날부터 우리 부부는 매일 한국방송만 봅니다. 케이블이 있을때보다 TV를 더 많이 봅니다. 어쩌다 동네뉴스가 궁금하면, abc7이나 kron4를 트는데, 그때 우리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와.. 꼭 미국에 온 것 같다’
말만 알아 듣는다고 친구가 생기나요? 대화거리가 있어야 말이 통하고, 생각을 아니 마음이 통해서 친구가 되는 거지요. 영어를 기술로 볼때는 말하는 게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내가 친구를 못사귀는 것은 다 영어 탓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구요. 생활을 아니까 영어가 들리고 내 입도 열렸습니다. 그래서 ‘ 언어는 생활’ 이였던 겁니다. 그걸 안 다음부터 영어 안 는다고 한국 비디오도 안 빌려 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영어고 뭐고 한국방송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다시 보니 예전 보다 방송이 참 자연스러워진 걸 느꼈습니다. 한솥밥 먹은 사람으로서 방송이 발전한 것 같아 기분 좋았습니다. 그리고 나도 변한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에서 살 때는 저도 별 의미없이 툭툭 던졌던 말이 특히 드라마에서 많이 들리는데, 그게 귀에 참 거슬리는 겁니다.
‘남들처럼은 못 해줘도’, ‘ 남들 눈도 생각해’, ‘남들이 들으면 욕한다’…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참 불편했습니다. 남편이 저와 대화 할 때, 말하는 방법이 서로 달라서 답답해 하는 것이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싸잡아서 하는 식의 나의 말입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이 ‘ 남들처럼’ 입니다. 내가 ‘ 남들처럼 우리도 외식하자’ 하고 말한다면 남편은 분명 이렇게 말할 껍니다.
‘그 ‘남들’ 이 누군데? 왜 있지도 않는거에다 비교하고 살어. Follow your heart!’
그 말을 이제는 저도 하고 싶어졌습니다. ‘ 남들처럼’ 이라는 말 속에는 편을 가르고, 어느 한 쪽에 속해야 마음이 놓이는 습관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람한테는 제 각각 하나님이 주신 색깔이 있는데, 나와 비슷한 색을 대표로 내밀어서 나를 표현하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생긴대로 사는 훈련을 받지 못한 것이지요. 저도 ‘남들처럼’ 대학을 나와야 번듯한 직장도 갖고 돈도 번다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의심없이 따랐습니다. 하다못해 고등학교때만이라도 - 난 이런 걸 좋아하고 크면 이런 일을 해보고 싶어 -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재밌지 않았을까. 아쉽습니다. 속고 산 것 같아 억울합니다. 그런데 누가 속였나요. 제가 절 속인거지요. ‘남들’ 과 다르게 사는 건 그때 그때 따지고 불편한 일입니다.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타협하면서 사느라, 제가 저를 속인겁니다.
‘오바마’냐 ‘클린턴’이냐. 동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멀리 태평양 건너 고향소식에만 빠져 있다고, 겨우 되는 영어 까먹는다고, 한국방송 볼때마다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숙제 미루고 TV보는 아이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글꺼리가 하나 나왔으니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만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좋은 핑게꺼리가 하나 생겼으니, 한동안 한국방송 끓기는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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