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우수정(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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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각 중에서 후각이 가장 예민하다. 냄새에 그만큼 민감하다는 얘긴데, 아주 미세하게나마 공기 중 부유하는 냄새의 입자를 매번 귀신같이 낚아채는 나를 보고 남편은 개 코가 따로 없다며 혀를 내두르곤 한다. 간혹 남들은 도무지 맡아지지 않는다는 냄새마저 혼자 킁킁거리며 유난을 떠는 통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하는데, 나도 그런 내 자신이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옆 사람의 체취, 이웃집에서 풍겨 나오는 갖가지 음식 냄새, 심지어 나만이 느끼는 우리 동네 밤거리 특유의 냄새에 이르기까지 내 코는 오만가지의 냄새를 맡아내느라 한 시도 쉴 틈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나의 기억은 냄새와 연관된 그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과거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그 사람의 다른 면면보다 유난히 체취의 기억으로 오래 남는다. 그윽한 샤넬 장미 향기가 나던 누구, 움직이기만 하면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나던 누구, 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떤 상황이나 장소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풍기던 냄새로 대개 나의 기억은 시작된다.
내가 미국에 와서 처음 맡은 향기를 잊을 수가 없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이었는데, 남편 회사에서 임시로 마련해준 아파트 단지 내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그때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알 수 없는 향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아마도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어서 그 향기가 더욱 그윽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그 향기는 미국 땅에 첫발을 들여 놓은 나를 향긋하게 반기는 듯 했고, 미국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을 무척이나 좋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도 ‘미국의 냄새’로 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정체 모를 향기는 나중에 알고 보니 빨래 세제인 Tide 냄새였다.
나는 요즘 5월의 냄새를 맡고 있다. 그게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딱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냄새. 그걸 그냥 나는 5월의 냄새라고 부른다. 어쩌면 그건 꽃 냄새 일 수도 있겠고 나무, 또는 풀내음 일 수도 있겠고, 또는 그 모든 것들이 모두 어우러졌음직한 5월 특유의 냄새다. 오늘도 그것에 잠시 취해 있다가 문득 예전에 내가 맡았던 5월의 냄새는 이게 아니였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
소위 386세대인 나. 그런 내게 있어 5월의 냄새는 눈물없이 맡을 수 없는 그것, 바로 최루탄 냄새였다. 하지만 그토록 강렬했던 내음도 어느새 내 기억 속에 가물가물하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내가 미국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최루탄 냄새와 5월을 더 이상 연관시키지 않는 걸 보면, 내가 살던 조국엔 좋은 세상이 온 걸까?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눈물짓던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그런 세상 말이다. 그렇다면 요즘 한국의 5월은 무슨 냄새일까…… 나의 젊음이 누비고 다니던 대학가, 그 거리의 냄새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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