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토막 광고는 (classified advertisement)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너무 작은 지면이라 자칫하면 독자의 눈길이 지나치기 쉽다. 옛날 한국에서는 대학생들의 가정 교사 광고가 늘어서 있었고, 각종 사기 대출 광고도 조그만 구석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4년 겨울에는 유신 헌법 통과에 맞서는 동아일보가 정부의 압력에 의한 광고주들의 광고 해약 사태를 당했었다. 이 때, 국민들이 토막 광고란을 사서 부족한 광고 수입을 충당했었다. 당시의 광고 중, 지금까지 기억나는 한 독자의 토막 광고로는 “동아 너마저 그런다면 난 정말 이민갈꺼야. 어느 이대생”이다. 그 이대생도 지금쯤 할머니가 되었으리라.
지금은 인터넷 속으로 사라진 구혼 광고들이 옛날에는 산 호세 머큐리 뉴스에 여러 페이지를 차지했던 적이 있었다. 이 광고들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아주 재미있는 우리네 인생 무대의 전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대의 여성들은 “금발 (blonde)”이나 “몸매가 날씬하다 (physically fit)” 등으로 자신의 외모를 강조하는 말들을 많이 썼다.
30대의 여성들은 주로 결혼의 상처가 남았는지 “애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must love children)”한다는 결혼 조건을 내걸었다. 40, 50대의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람 (financially stable)”이나 “주택을 소유한 사람 {must own house}”을 조건으로 내세워 외롭기는 한데 일푼없는 건달은 안된다는 광고들을 실었다. 60대가 지나면서 “에라 이래도 저래도 외로움 만은 벗어보자”는 듯 “여생을 함께할 반려자 (share the rest of life)”의 광고문이 눈에 띄였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지역 한인 신문에 난 구혼 광고들을 보면서 우리 표현력이 아주 제한적인 느낌을 받는다. “정직한 분 원함”이라는 광고를 보면서 부정직한 배우자로 부터 혼이 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실한 분을 원함”이라는 광고에서는 게으른 남편에게 혼이 났던 분이 아닐까하는 의문도 생긴다. 성실한지 정직한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구혼 광고에서 “시린 가슴을 녹일 따뜻한 품을 찾는다”는 2003년 어느 40대 여인의 구혼 광고가 오히려 솔직해서 인상적이다. 그 시린 가슴이 녹았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 신문 기사를 보면 한국의 이혼율이 세계 3위라고 한다. 사실 결혼이란 가냘픈 약속에 의한 것이다. 배우자가 나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한다면 불만이 가득하게 된다. 내가 배우자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한다면 배우자를 위해 할 일이 너무 많아 불만의 시간도 없어질 수 있다. 현실을 피하려다 더욱 냉혹한 상황을 맞을 수 있으므로 인생길에서도 앞뒤좌우를 잘 살피며 조심스레 한걸음씩 발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폴 손> sfkt@paulsoh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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