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갈피에 남아 추억이 되는 것
2년 전, 40일 동안 아프리카엘 갔었다. 5개국을 돌며 참 많이도 보고, 만나고, 듣고, 경험하며 놀라고 울고 느꼈었다. 시간이 지나니 그 부글거리던 것들이 서서히 내 안에서 숙성되어지는 것을 느낀다.
잊혀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날이 갈수록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것들도 있다.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경치나 상황들도 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의 갈피에 남아 추억이 되어 그리워지는 것은 역시 만나서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 이다.
르완다의 키붕구 라는 산골마을에서 만난 사람이 어거스틴 이라는 젊은 목사님이었다. 후리후리한 큰 키에 줄무늬 와이셔츠, 그리고 잘 다려진 검은색 바지를 입고 큰손을 내밀며 부드러운 악수로 만났는데 미소와 함께 목례까지 하는, 참으로 차분하고 맑아 보이는 첫 인상이었다. 나와 대학생선교단원 4명을 도와 안내와 통역을 위해 합류된 현지인 이었다. 한 팀이 된 우리6명은 오전엔 학교에서 4시간, 오후에는 마을의 어린이들에게 또 4시간, 하루에 두 차례씩 3일 동안 여름 성경학교를 열어야 하는 어린이사역 동역자 였다.
‘심상이 관상’이라 했던가. 황토 빛 흙먼지를 뒤집어 써 가며 짧은 기간 같이 일을 하였지만 나는 그가 첫인상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알았다. 헐벗은 아이들을 더없이 아끼고 함께 일하는 우리들을 귀히 섬길 뿐만 아니라 무지한 자기 민족을 인내와 사랑으로 대하는 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말씀과 꿈을 심어 주려는 단단한 사명감이 있었고 언젠가는 이제 시작한 그의 교회에서도 성경학교를 열고 싶다는 소망도 품고 있었다.
안내는 물론 정확했고, 7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질서 유지에서부터 통역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다 했다. 게임을 할 땐 아이들과 같이 뛰었고, 비실비실 쳐지는 아이들은 자상하게 설명을 하여 불러 들였다. 우리들의 식사와 이동까지도 세심하게 챙기며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했다. 나라에서 봉급을 받는 선생님들마저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관심 없이 서있기만 하는데 그는 땀을 흘리며 아이들을 격려하고 부추기며 잠시도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일정을 끝내고 차에 오르려는 나에게 의외의 부탁을 해 왔다. 이 선생님들을 한 곳으로 모을 테니 내가 늘 전하던 말(꿈과 의욕과 희망에 대하여)을 이들에게도 좀 해주고 가잔다. 선생님들이 깨쳐야 아이들의 미래가 열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면서.
하루를 마치며 감사를 드리는 내게 그는 오히려 자신이 큰 힘을 얻는다면서 우리를 아낌없이 격려해 주곤 했다. 피곤한 우리에게 풋풋한 사랑으로 기운을 돋우어 준 사람.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야만 했던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고 나는 그를 잊은 듯 했었다. 그러나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은 지워지지 않고 마음의 갈피에 남아 추억이 되어 생각나는 가 보다. 그도 또 그의 소망도 아프리카의 칠 흙 같던 밤에 보았던 뇨따(반딧불, 별)가 되어 폴폴 날아오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