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결혼을 할 때에 우리는 흔히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별로이나 본인들이 깊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 콩깍지라는 것이 대단한 역활을 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아서 나중에는 그 굴레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삶은 이어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그러한 인생의 여정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히 일생을 같이 하기로 작정하는 결혼이 한순간에 결정되기도 하는 때가 있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바로 그 콩깍지 혹은 제 눈의 안경 때문인데, 어찌된 일인지 자신의 일생이 걸려있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이 완전히 감정에 의존되어 결정지어지는 일이 많이 있다. 이름하여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의 감정은 남녀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더욱 견고하고 완강하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부모들의 눈에도 그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콩깍지가 씌워진다. 남이 보면 평범한 아이이건만 부모는 온 몸을 던지면서 일생동안 아이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 무한정한 사랑의 용량도 엄청나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사명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기도 하고, 마냥 행복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어나는 부작용의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자랑하고 싶어지는 팔불출의 형태인데 그러한 현상은 자식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인 손자들에게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한 자랑이 윗 세대로 올라가면, 자신들의 부모가 가장 훌륭한 부모라든지, 자기의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인 어머니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없었더라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나의 것이 아니라 상대편의 눈에 있어, 그것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또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나와 살고있는 배우자의 눈에 콩깍지가 없었더라면, 내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결점과 부족한 점이 낱낱이 보여서 한시인들 살 수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한없이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이 날까지 싫증도 나지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의좋게 살고 있는 것은 결코 내가 잘나서가 아닌 것이다. 나의 수고와 인내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우리의 삶이 정말은 배우자가 눈에 지니고 있는 콩깍지의 덕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 눈의 안경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빛깔은 오직 내가 원하는 색으로 온통 채색 되어 있을 것이다. 나의 친구들도 그러하고 나의 친족들도 내가 보고 싶은 빛깔로 나의 눈에 비추이고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나의 친구들이 지니고 있는 비슷한 색깔들이다. 그것이 내 눈의 안경이 지닌 색깔 때문인지, 아니면 그러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내가 친구로 골랐기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나의 사랑하는 자식들과 배우자와 형제와 친구들을 다시금 바라본다. 내 눈에 콩깍지를 지니고 바라보는 그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나의 영원한 안경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하나의 그림이 되어, 지금은 오히려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내가 일생 동안 그리고 있는 그림의 색깔은, 지나치게 어둡지고 밝지도 않게 적당한 광도를 지닌 그림이기를 바란다. 지나침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원리대로 나의 콩깍지는 내 눈에 적당한 크기이기를, 넘치지 않는 나의 마음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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