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쇠고기 수입문제와 관련, 설화(舌禍)를 일으킨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원래 한국에서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었다. 지난 4월 9일 상원 청문회를 통과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 지명자 인준안이 곧장 본회의 관문을 넘었다면 버시바우 대사는 벌써 이임(離任) 인사를 했을 수도 있다. 스티븐스 지명자보다 6일 전에 상원 인준 청문회를 가졌던 월터 샤프 주한 미군사령관이 이미 한국에 부임, 활동을 시작한 것을 보면 무리한 추측이 아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버시바우 대사의 자리에 있어야 할 스티븐스 지명자는 요즘 거센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70년대 평화봉사단 마크를 달고 ‘심은경’이라는 이름으로 충남 예산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그에 대한 인준안은 상원의 ‘미결’ 서류함에 처박혀 있다. 두 달 전 상원 외교위원회의 인준 청문회가 축제 분위기에서 열린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당시 인준 청문회에선 얼마 전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참고인’ 자격으로 스티븐스 지명자 옆에 나란히 앉아 눈길을 끌었다. 캐슬린은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했으며 한국어를 구사하는 최초의 미국 대사가 되는 데 손색이 없다는 칭찬이 노(老)정객의 입에서 나왔다. 바버라 복서 상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은 스티븐스 지명자가 한국인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제임스(21)를 일으켜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샘 브라운백상원의원이 스티븐스 지명자의 내정을 문제 삼으면서 가시밭길이 시작됐다. 공화당 보수파인 브라운백 의원은 국무부가 대북 인권문제를 강하게 제기할 것을 요구하며 인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주한 미대사의 직무와 북한 인권문제를 연계시키는 그의 논리에 대해 국무부는 반발하고 있지만 일부 동료 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 국무부가 그동안 탈북자, 북한 인권문제를 개선시키지 못한 채 북핵 협상에서 유화적 자세를 취했다는 비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브라운백 의원이 스티븐스 지명자를 추천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도 유력하다. 스티븐스 지명자 인준안의 본회의 통과가 두 달 가까이 지연되면서 이젠 누구도 그의 운명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미 의회의 한 관계자는 단정적으로 스티븐스의 대사 임명은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스티븐스 지명자의 대안으로 다른 인물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에 특명전권대사로 누구를 보내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미국 정부와 의회의 권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주한 미대사 내정자 인준 지연이 미국 정치권과 행정부의 힘 겨루기 속에 방치되는 것은 한국이 중요하지 않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주한 미대사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가장 중요한 외교 사절인 것은 틀림없다. 2002년 ‘효순·미선양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시 주한 미대사가 그 심각성을 좀 더 일찍 파악했더라면 한미 간의 갈등은 최소화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음 달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방한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문제는 가부간에 어떤 식으로든 조속한 결정이 내려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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