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내 고향은 전주다.
나의 어렸을때 살던곳은 덕진 연못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듯싶다.
왜냐하면 해마다 유치원 소풍 때는 덕진 연못의 아름다운 연꽃들을 봤던 기억이 난다. 깨꿋하지도 않은 물속에서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날까 하고 어린 마음에도 무척 신비롭게 생각 했었던것 같다.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시골스러운 곳이라 근처에 야산 들도 있었다.
봄이면 진달래가 온산을 물들일때 천방지축으로 동네 아이들과 산으로 들로 다니며 진달래도 꺽고 때로는 뿌리채 파오기도 해서 언니 오빠들의 도움을 받으며 나만의 조그만 화단을 만들어 놓았었다. 나는 작은 동산을 만들고 싶어서 때때로 돌맹이도 주워다가 흙더미 여기 저기에 놓았었다. 가장자리에는 가느다란 대나무 자른것을 구부려서 타원형으로 만들어 빙 둘러 놓았었다. 시냇물도 만들려고 동산을 따라 조금깊이 땅을 파서 물을 열심히 떠다 부었었는데 얼마 지나면 그만 흙속으로 스며들곤 해버렸었다. 가끔 할미꽃도 뽑아다 심었는데 쉽게 시들시들 해져 버렸다. 난 지금도 무척이나 할미꽃이 그립다.
살며시 고개 숙인 할미꽃은 어찌 그리도 신비스럽게 보였는지 모른다.
겉은 솜털같은 것으로 쌓여있고 속안은 자주빛 비로드 같았다.
모내기 철에는 논밭에 나가면 찰랑거리는 물속에 있는 우렁이를 잡을수 있었다. 가끔 달팽이를 우렁이 인줄알고 잡기도 했었지만.
뙈약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동네 아이들과 냇가에 나가 물장난을 쳤었는데 실뱀이 물위를 지나가기도 했었다.
마을 어귀에는 아카시아꽃이 만발해 바람에 실려오는 달작지근한 향기에 취해서 그꽃으로 목걸이도 만들고 따서 먹기도 했었다.
가끔씩 아버님과 오빠와 같이 전주천으로 낚시를 갔었는데 한번은 왕거머리가 엄지 발가락을 둘러 싸버려서 아버님께서 간신히 떼어 주신적도 있다.
물가에서 놀면서 돌을 가만히 들면 돌뒤에 대수리(아주 작은 소라)들이 붙어 있는데 떼내어 모아서 된장 약간 풀어서 끊여 끝을 살짝 깨물어 빨아 들이면 그속에서 조개살 같은것이 나오는데 맛이 그만이다.
그러다 소나기 라도 내리면 근처 원두막에 가서 어른들이 수박과 참외등을 밭에서 직접 따 오셔서 그 자리에서 주먹으로 치면 어찌나 잘 익었는지 먹음직스럽게 쪼개지곤 했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잊혀졌을 법도 한데 더욱더 또렷하게 실타래 풀려 나오듯이 끝도 없이 떠오른다.
그때는 텔레비전도 없었고 밖으로 즐길수 있는것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자연과 더불어 즐겼고 자연에서 나오는 것만 먹었었다.
공기도 더없이 맑았었고 어느 우물물을 마셔도 약수 같았었다.
공해 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때였다.
지금쯤은 나의 고향도 많이 변해서 어려서 뛰어 놀았던 곳들은 흔적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는 기억을 더듬으며 한번 가보고 싶다. 아마 너무도 달라진 모습에 실망은 되겠지만.
어린날의 추억들은 평생동안 어디에서 살든 가슴속에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 우리들을 포근하게 해준다.
이제 곧 여름이 깊어 갈것이다.
머어언 고향땅 아카시아 꽃향기가 태평양 바람을 타고 내 마음의 고향으로부터 불어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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