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눈빛
한 사람의 일생에 몇 명의 선생님을 만나게 될까. 적게는 다섯 손가락 안에서 많게는 스무 손가락 넘게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도 많은 선생님들과의 인연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돌이켜보니 무섭고 공부만 가르치던 선생님보다 나를 이해해주던 따뜻한 선생님이 더 기억에 남는다.
고 3 때 담임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셨다. 등록금 못 낸 학생들을 따로 부르거나 성적을 공개하며 아이들의 기를 꺾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으시던 선생님이셨다. 말수가 적으시고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우리들을 인자한 모습으로 보고 계시던 그런 선생님이셨다. 1학기 중간고사 때부터 몸이 안 좋기 시작해서 성적이 급추락했던 나는 고 3 내내 우울하고 힘이 들었다. 꼭 감옥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성적 떨어진 것을 지적하며 상처에 소금을 뿌릴 때, 담임선생님은 그저 묵묵히 어깨를 툭툭 쳐주시거나 교무실로 불러 걱정 어린 눈빛으로 담담하게 현재의 사실만을 얘기해 주실 뿐이었다. 한 번도 질책하거나 다른 선생님들처럼 이래가지고 네가 원하는 대학은 어림도 없다고 기를 죽이지도 않으셨다.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재수는 죽어도 안한다고 도망가듯 들어간 대학에서 나름대로 재미가 들 무렵, 선생님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교무실 안의 난로가 터지면서 전신 화상으로 생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병실로 찾아간 나는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을 볼 수가 없었다. 온몸이 붕대로 칭칭 감겨 있어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붕대 밖으로 겨우 나와 있는 피범벅이 된 입술뿐이었다. 말을 하면 체온이 올라가서 안 된다며 기도만 해달라는 사모님의 말씀을 자르고 선생님께서 피범벅으로 부르튼 입술을 열어 곁에 서 있는 내게 딱 한 말씀을 힘들게 하셨다.
“일란이 이 녀석은... 맘이 약해서... 걱정이야.”
며칠 후 선생님은 돌아가셨다.
이제야 나는 나를 안다. 고 3때 그렇게 아팠던 것도, 숨이 막히게 답답한 것을 털어내지 못했던 것도 다 내가 약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선생님은 나를 알고 계셨다. 그랬기 때문에 나를 야단치지도 않고 따뜻한 눈으로 지켜만 보셨던 것이다.
학기말이 되면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는지, 재밌는 수업이었는지 자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아이들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가르치고 따뜻한 사랑으로 돌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3시간 정도를 보면서 아이들을 파악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엄마처럼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폈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고 3때 담임선생님처럼 늘 인자하고 든든한 그런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건만 그것도 보통 내공이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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