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김정옥 /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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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토론토에 사는 딸네 집을 다녀 왔다. 6살 4살인 외손자 외손녀와 많이 놀고 왔다. 직장관계로 부모와 친구들을 떠나 먼 곳에 가서 네 식구가 올망졸망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왔다. 긴긴 겨울동안 지저분하게 쌓여있던 눈도 말끔히 녹아 있고 칙칙한 하늘을 제 맘대로 휘저으며 행패를 부리던 바람도 한결 잔잔해진 5월의 끝자락이었다.
아이들이 사는 곳이 시내에서 한 40분 정도 떨어진 북쪽의 변두리여서 인지, 높은 하늘로 쭉쭉 뻗어 오른 수려한 단풍나무들은 과연 이 나라의 상징이라 해야 만 할만큼 사방 천지에 많기도 했다. 그 무수한 잎들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이 아주 아름다웠다. 그 부드럽고 유연한 흔들거림에 나는 넋을 잃을 뻔했다.
공원이나 놀이터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부터 과학관 경기장 무용학원 기계체조 배우는 곳까지 따라다니며 ‘할머니 할아버지 노릇’을 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손도 흔들어 주고 제 부모들이 제한을 두는 아이스크림마저 나날이 사 먹여 가며 짝짜꿍이되었다. 아침에 눈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놀아 주고 싶지만 결국 힘에 부쳐 주저앉는 건 우리 둘이었다. 주머니 돈으로 하는 노릇은 그나마 쉬운데 지칠 줄 모르고 반복하며 같이 하자는 놀이에는 도저히 당해 낼 방도가 없었다. 참으로 힘든 노릇이었다.
다 같이 2박3일간 나이아가라 폭포에도 다녀왔다. 잔잔하게 흘러 내려 온 물이 넓고 평평한 테이블 같은 강에서 단박에 떨어져 내리면서 표출해 내는 그 웅장함이라니! 말발굽처럼 휘어진 모습으로 둘러쳐져 끊임없이 수심 깊은 곳으로 내려꽂히는 폭포는 힘과 자유와 진리를 선포하는 신의 메시지 같았다. 폭포 밑에서 흔들리는 뱃전을 잡고 선 나는 미세한 안개로 가볍게 날아와 몸을 적셔 주는 촉촉한 간지러움에 온 몸을 맡겨 버릴 수밖에 없었다. 거역할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화해의 순간이었다.
여행을 하다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지루하고 피곤이 쌓이는 일상에서 벗어나 모든 것들을 훌훌 털어 내자고 떠난 여행이건만 오히려 여행은 이런저런 이유로 또 다른 피로를 무겁게 어깻죽지에 달아 준다. 어디 그뿐인가 몸은 비록 멀리 왔지만 마음을 괴롭히던 얽힌 문제들은 사실상 한시도 마음에서 지워진 적이 없이 바쁜 스케줄 사이사이에도 번쩍번쩍 칼날 같은 고갤 쳐들곤 했었었는걸. 번번이 그랬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하루가 끝나 가는 해질 무렵 조용히 혼자 머무는 곳 주변으로 길을 나서는 것이었다. 목적도 없이 제한도 없이 그리고 기약도 없이. 살면서 차분히 듣지 못했던 마음 속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떠나 온 사람들과의 관계도 욕심 없이 들여다보게 된다. 낯선 여행길에서 이렇게 혼자가 될 때 그나마 나는 조금이라도 정직해 진다. 그래서 내가 중심이었던 모든 것들로부터 내가 이렇게 빠져버려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나에게 ‘나의 죽음연습’을 연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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