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으로 남는 사람
=====
한국에서 14년간 교직에 있다가 휴직하고 미국으로 잠시 살다가 간다는 것이 그냥 뿌리를 내리고 살게되어 퇴직으로 이어졌다. 나름 가르치는 것에 보람도 느끼고 애착도 가졌었는데 퇴직하려니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이 곳 한국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어서 정말 다행으로 좋았고 아쉬운 마음도 대신 채워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10여년전에 가르쳤던 제자가 대학생이 되어 이런 저런 수소문 끝에 이곳 미국까지 전화를 주었다. 교육청에 찾아가서 보니 이미 퇴직했지만 기록에 남아있는 시댁 전화로 연락해서 이 곳 미국 전화 번호를 알아냈단다. 너무 고마웠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어 보고 싶은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도 감사했고, 내게도 고마우신 은사님들이 있었지만 살기 바쁘다는 핑계를 앞세워 게으름 때문에 미뤄왔던 것을 제자는 내게 솔선해서 보여줬다.
전화를 처음 받았을땐 기억이 잘 안났지만 점차 생각이 났다. 전화 준 소영이는 소영 아버지가 많은 형제 사이에서 자라 형제 많은 것이 싫다고 절대 한명의 자녀만 두겠다고 고집하여 낳은 외동 딸이었고 나는 배부른 임산부 교사였다. 그 때는 배불러서 거동이 불편한 것이 아이들에게 누가 될까봐 피해가 안가도록 더 열심으로 정성을 기울였던 것도 같다.
그냥 전화해서 선생님의 옛모습은 어떠어떠 했고 옛날에 이런 저런 말들을 자기에게 해주었으며 내가 선물로 준 `어린 왕자’ 책도 지금까지 갖고 있다고 했다. 내가 기억 못하고 잊은 것까지 잘도 기억하고 있었으며, 다른 친구들 소식까지 들려 주었다. 그 당시 반장이었던 아이가 사고로 죽었다는 얘기를 들을 땐 외동 아들에 온갖 기대를 걸며 지극 정성이었던 그 어머니가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그 당시 그땐, 뒤에 그 아이가 죽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얼마 전 장례식에 갔었다. 그 분을 추모하며 생각했다. 과연 내가 죽은 뒤에 자식들은 나를 좋은 엄마로 기억해 줄까? 남편은 나를 좋은 아내로, 친구들은 나를 잊지 못할 좋은 친구로, 좋은 직장 동료로, 학생들에겐 기억에 남는 좋은 선생님으로 나를 기억해 줄까? 갑자기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장례식장에서 나를 추모할 때 잊혀지지 않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지금도 같이 살아가고 만나고 인연을 맺어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마음 사진기, 생각 사진기, 기억 사진기로 누군가에게 매일 찍히고 기억되어 추억이라는 사진첩에 저장되고 있다. 사람이기에 실수도 하고 좋은 모습 보여 줄 때도 있지만 남에게 험담 거리를 제공하며 살 수도 있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기에 남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줄이고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기왕이면 타인에게 좋은 인상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