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하 (원불교 샌프란시스코 교당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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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하다가 꽃 화분을 구석에 잠시 치워두고는 다시 제자리에 두는 것을 잊어 버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 두었더니, 물주는 것을 잊게 되었고, 며칠 물을 주지 못했더니 꽃과 잎들이 모두 시들해졌다. 시무룩하게 보이는 화분을 가져다가 물을 주고, 햇볕에 한 두 시간쯤 놓아두었을까. 시들었던 꽃과 잎이 생기를 찾기 시작한다. 꼭 수채화 물감으로 물을 들인 것처럼 선명하게 올라오는 보랏빛 꽃잎들이 얼마나 신기한지. 물은 색깔이 없는데, 색깔이 없는 물에서 그렇게 영롱한 빛을 만들어 내는 꽃이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아, 우리의 마음도 저 화분과 같지 않을까? 저 화분처럼 마음도 보이지 않는 곳에 놓아두면 물과 햇빛을 받지 못한 채 이렇게 시들어 가겠구나. 그래서 마음을 항상 보이는 곳에 잘 챙길 수 있도록 두어야 하겠구나.’
한번은 어느 분이 “교무님은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였다. “깨달음이요? 깨달음에도 그 깊이에 따라서 천층만층이 있다고 하지요. 예전에는 하루 24시간 동안 제가 무엇을 하였는가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 그 일에 마음이 깨어있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가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마음을 보이는 곳에 둔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마음이다. 그 알아차림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습관적으로 의식하지 않고 나오는?마음들을 멈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순간에 펼쳐지는 삼라만상의 원리와 근원을 보는 것이다.
마음에서 솟아오는 샘물은 기억에 의해서, 생각에 의해서 솟는 샘물이 아니다. 그래서 욕심이 나도, “나”라는 우쭐하는 아상이 나와도, 멈추고 바라보게 되면 살며시 미소만 남기고 사라진다. 내 안의 샘물이 계속 생명과 같이 솟아오르니 거기에 반향 하는 소리도 생명과 같이 순간으로 새롭다. 이것이 첫 번째 바라봄이다.
다른 하나는 근원과 원리를 보는 마음이다. 우리는 보통 나무의 근원 하면 뿌리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무의 근원은 비단 뿌리만이 아니다. 잎의 근원은 가지가 되고, 가지의 근원은 줄기가 되고, 줄기의 근원은 뿌리가 되고, 뿌리의 근원은 땅이 되고, 땅의 근원은 하늘이 된다.? 이렇듯 이 세상 만물을 근원으로 바라보고, 모시며,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근원을 보는 마음이다. 이렇게 연결 되어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을 헤아리면 하늘마음을 알게 되고, 내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면 그 사람의 처지를 자연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원리를 아는 마음이다.
멈추고 바라보는 마음과 원리와 근원을 보는 눈은 어디에서든지 그 향기와 훈훈함을 남기게 된다. 깊고, 넓고 길게 보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이 여유 있고 넉넉하게 쓰면서도 흔적이 없게 되는 것이다. 순간에 깨어있는 마음, 근원과 원리를 알고 거기에 물을 주고, 가꾸는 마음, 그렇게 되면 시들었던 마음의 꽃도 금방 다시 저 화분처럼 그 생명력을 피워 내리라. 물을 먹고 예쁜 꽃으로 보답하는 화분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에서 발하는 말과 행동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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