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에게는 왕도정치를 실현케한 정도전과 일개 장수를 군왕으로 바꾸어놓은 무학대사가 있었고 세종대왕에는 세종을 선군으로 만들어 놓은 황희와 맹사성 같은 명 재상이 있었으므로 한글 창업을 이룩할 수 있었다면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한국의 경제발전의 기틀을 만들어 놓은 장기영씨와 같은 경제장관이 있었다.
5.16 군사혁명 후 박 대통령은 낙후된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여러가지 방법을 써 보았지만 별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고심하던 차에 당시 한국일보 창업주였던 장기영씨를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임명하기로 결심했다.
장기영씨는 배짱좋고 추진력이 강하며 누구에게나 직선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직언하는 사람으로 이름보다 왕초라는 별명이 더 알려진 인물이다.
5.16 혁명 후 패기당당한 대통령 앞에서 누구도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시대에 그는 왕초답게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직선적으로 잘잘못을 지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대통령은 함구하는 정치인이나 경제장관보다 소신있게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장기영씨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박 대통령은 1964년 5월 경제기획원 장관에 장기영씨를 임명하고 많은 시간을 그와 독대하여 경제정책을 논했다고 한다.
장기영씨는 아침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부처업무를 보고 아침 5시30분에 등청하는 강철같은 장관이었다. 그에게는 이런 일화가 있다.
왕초가 경제장관이 되었다고하여 알고 있는 지인, 정치인, 경제인들이 시도때도없이 장관실을 예고도 없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장기영씨는 사사로운 면담을 막기 위해 옆에 조그마한 골방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집무를 보았다고 한다. 그것을 모르는 정치인 경제인들이 장관이 매일 집무실을 비운다고 불평을 하였는데 특히 K 국회의원은 모처에서 장관의 근무상태를 지적하였다고 한다.
그때 장기영씨가 처음으로 옆방 집무실 이야기를 세간에 공개하여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후 K 국회의원은 정계를 은퇴하게 되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지금 한국은 대통령도 있고 장관도 있으나 장기영씨 같이 소신있게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장관이 없다.
장관들은 대통령의 눈치보기 바쁘고 국민의 여론에 휘말려 이리뛰고 저리뛰는 정치상황 속에서 국민들은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아무리 좋은 제도나 정책이라도 법을 집행하는 기관과 법을 따르는 국민간의 상호 신뢰가 구축되어야만 올바른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는 불신과 반목으로 싸우는 것을 보면 정책대결보다 이념과 사상적 대립으로 치솟고 있는 것을 현실이 마치 60년전 남한에서 좌익 우익하며 밤낮으로 데모하던 때가 다시 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정치를 보노라면 박정희 군사정권의 향수에 젖고 장기영씨와 같은 왕초가 나와 이 불안한 현실을 바로잡았으면 좋겠다는 한탄섞인 염원의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