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평생 버리고 싶지 않은 소원이 있다면/ 나무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축시 한번 낭송해 보는 것이다// 내 한평생 끝끝내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우수가 지난 나무들의 결혼식 날/ 몰래 보름달로 떠올라/ 밤새도록 나무들의 첫날밤을 엿보는 일이다...(중략)」 (정호승의 나무들의 결혼식).
시인에게 나무는 죽마고우다. 그 친구 나무들의 결혼식에 꼭 가고 싶어했는데 나무들이 속절없이 불타고 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숫 청송(靑松)들과 젊은 삼나무들이 훨훨 타고 있다. 극심한 한발이 휩쓴 올 여름, 북가주 명승지 빅서에서 번갯불로 점화된 산불은 지금 3주 째 1,800군데에서 극렬하게 번지는 중이다. 6십만 에이커나 태우고 말리부 해안까지 남진하고 있다.
요즘 북미 대륙에 대형 산불이 잦다. 1988년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송두리째 삼킨 세기적 화재를 필두로 큰불이 자주 일고 있다. 10년 전 보다 피해면적이 2배나 늘고 진화에만 연10억불이상 든다. 왜 대형 산불이 잦을까? 그 원인이 지구 온난화로 극심해진 가뭄 때문으로 밝혀지고 있다. 숲마다 바싹 마른 불쏘시개 땔감 잡목들이 지천이다. 거기에 강하고 더운 산타아나 계절풍이 불면 산불은 하루 60킬로 속도로 무섭게 번지고 만다.
그런데 자칫 우리는 잊고 산다. 산불은 재난이전에 자연의 섭리란 사실이다. 때를 따라 하늘은 번갯불을 내려 묵은 잡목들을 말끔히 태운다. 그리고 잿더미 양분 위에 새 나무들을 키운다. 숲을 건강하게 재생시키는 조물주의 뜻이다. 그래서 산불은 숲을 순환시키는 촉진제다. 어떤 산불에도 솔방울 속 씨가 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산불 연기를 맡으면 식물들은 마치 새색씨 들처럼 발아(發芽)를 서두른다. 유클라팁스 나무에 기름이 많은 까닭도 산불에 스스로 땔감이 돼 열등식물들의 과잉번식을 막으려는 오묘한 섭리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꾸 산과 숲 한가운데 떼지어 집을 짓는 것이다. 나무의 영토에 무단 입주하는 격이다. 해서 미 산림청은 집과 사람을 보호하느라 조그만 산불도 무조건 진화하는 정책을 써왔다. 그 결과, 숲은 노후하고 건강이 약화돼 병충해를 쉬 이기지 못하고 튼실한 열매도 맺지 못하게 됐다. 요즘엔 웬만한 산불은 끄지 않는다. 또 제한된 지역에 일부러 산불을 내는 전략도 쓰고 있다.
인류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오로지 생존과 이익만을 위해 나무를 베고 숲을 훼손시켜 왔다. 흙의 양분을 고갈시키는 화전(火田)을 일궈 온지 수천 년 아닌가? 개발을 목적으로 무차별 벌목해 민둥산을 만들고 숲을 오염시킨다. 화력발전으로 배출된 유황가스 때문에 황산비가 내려 삼림이 고사되고 있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로 지구 온난화와 한발이 계속되고 숲은 오늘도 속절없이 타오른다.
나무의 벗, 정호승 시인은 벼락에 대하여란 시를 썼다.
「벼락맞아 쓰러진 나무를 보고/ 처음에는 무슨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날/ 쓰러진 나무 밑동에서/ 다시 파란 싹이 돋는 것을 보고/ 죄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나무가 벼락을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들은 일생에 한번/ 썩은 사람들을 위해/ 벼락을 맞고 쓰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누가 나무를 대신해서/ 벼락을 맞을 수 있겠는가/ 누가 나무 대신/ 벼락맞아 죽을 수 있겠는가?」
시인은 나무숲이 죽어 가는 현실이 사람 탓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속죄하는 심정으로 나무대신 벼락 앞에 서겠는가? 오늘도 나무숲은 속절없이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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