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여성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또다시 거리로 나왔으리라 생각하고 언론 매체를 보았으나 촛불은 보이지 않았다. 촛불도 방학인가?
원래 촛불의 본질은 자기 스스로를 태워 남을 밝히는 데 그 아름다움이 있다. 촛불은 스스로를 태우는 나약함 속에 사물을 밝히는 강함 또한 내포하고 있다.
어느덧 촛불은 한국의 새로운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인의 인권이 피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정의의 촛불은 켜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만약 우리가 촛불을 차별적으로 켠다면 그것은 차별받은 인권을 위한 보편적 촛불이 아니다. 차별적이고 편협적인 촛불이 되고 만다. 촛불을 켜야 할 때 켜지 못하고 꺼야할 때 끄지 못하면 그러한 촛불은 눈치 보는 촛불이요, 촛불다운 촛불이 될 수 없다.
촛불은 진보나 보수의 소유물이 아니라 정의와 인권의 대변자이다. 좌파나 우파의 것이 아니라 바로 한국인 전체의 것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촛불은 결코 인권을 차별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촛불은 촛불을 든 자의 정의뿐만 아니라 촛불을 못 드는 자의 정의를 위해서도 켜져야 한다. 따라서 촛불은 촛불을 반대하는 자의 인권마저도 존중해야 한다. 촛불이 인권의 희생자를 막는 것처럼 촛불은 촛불 반대로 인한 인권의 희생자도 막아야 한다.
촛불의 절대적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말 없는 다수가 촛불을 두려워하거나 눈치 보는 일이 생기면 촛불은 진정 우리를 하나 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촛불은 결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촛불은 특정 국가를 차별하기 이전에 차별당한 특정 인권을 위해야 한다.
촛불은 강대국에 유린당한 인권뿐만 아니라 약소국에서 유린당한 인권도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 인권을 차별화하지 않음은 모든 인권은 인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촛불은 인권의 가해자보다 인권의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또한 촛불은 버려진 정의를 외면하며 침묵하는 다수에게 균형 잡힌 촛불을 위한 용기를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촛불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기 때문이다. 촛불은 채찍이며 격려이어야 한다.
촛불은 정의를 밝히고자하는 일종의 상징적 의사표현(Symbolic Speech) 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헌법상 언론의 자유에 의해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법적인 폭력을 동반한 촛불은 법치주의를 태워 버릴 수도 있다.
촛불다운 촛불은 한국을 동방의 빛이 되게 하여 세계를 밝힐 것이다.
그리고 인권을 세울 것이다. 촛불에는 방학이 없어야 한다.
전종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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