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E를 봤다.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가족 영화로 이만한 게 없다는 극찬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대사가 거의 없다는 대목에 그만 솔깃했던 것이다. 미국에 와서 처음 몇 번 영화를 보러 갔다가 자막처리도 안된데다(할 리가 없지만) 배우들의 입에 프로펠러를 단 듯 좌르르 쏟아내는 대사들을 따라 잡으려니 영화를 엔조이하기는커녕 머리에 쥐가 나기 일보 직전이 되어 나온 후론 영화관을 아주 경원시 하게 되었다. 그런 나를 배려한 듯, 이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는데다가 영상미에, 재미에, 메시지까지 있다니 때는 이때다 싶었던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월-E는 로봇이다. 뭐 하는 로봇이냐 하면 ‘지구 쓰레기 수거 처리용 로봇(Waste Allocation Load Litter Earth-Class)’이다. 주체할 수 없이 넘쳐 나는 쓰레기들로 온통 덮여버려 급기야 생명체라곤 살 수 없게 된 지구. 그렇게 뇌사 상태에 빠진 지구 상에 유일하게 남아 오늘도 묵묵히 쓰레기를 압축 처리하고 있는 로봇 월-E, 그리고 그의 애완용 바퀴벌레. 움직이는 것이라곤 달랑 그 둘뿐인 지구상에서, 어느날 월-E는 우연히 작고 푸른 생명체를 발견한다. 오래 전 지구를 떠나 우주를 떠돌던 인간들이 지구를 탐지하고자 보낸 ‘이브’라는 로봇이 그 푸른 생명체를 감지하게 되고, 월-E와 이브와의 사랑은 그래서 시작되는데…
에고, 영화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할까 보다. 어쨋거나 좋은 영화 한편 재미나게 보고 나오긴 했지만, 쓰레기로 온통 뒤집어 쓴 이 땅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사실 난 평소 핵폭탄이나 지진, 전쟁 따위의 공포보다 쓰레기 공포가 더 심하다. 미국에서 살다 보니 더 그렇다. 지금 이 시각에도 쉬지 않고 무진장 쏟아져 나오고 있을 쓰레기, 쓰레기들을 생각하면 무지하게 심란하고, 용량초과로 꾸역꾸역 내용물을 다시 뱉어내고 있는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다 어디로 가나 싶은 것이다. 하늘로 솟고 땅으로 꺼져 버릴 것이 아니라면 고스란히 옮겨져 지구 상 어딘가를 덮고 오염시킬테니 말이다. 이대로 가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영화 ‘월-E’가 가상의 상황 설정만은 아닌 것이다.
자연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오늘도 재활용 쓰레기 수거 자원봉사를 나갔다.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그는, 미국에서 한 사람이 하루에 버리는 쓰레기의 양이 4.6파운드에 달한다며, 버리는 건 할 수 없어도 되도록 재활용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아예 일회용품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듯 피자 조각을 그냥 자신의 손바닥에 달라고 했다. 그때는 웬 유난?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런 사람과 같은 사고의 전염이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지난 주 캠핑 가서 버리고 온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와 포크 따위들은 필시 나보다 더 오래 길이 길이 썩지 않고 이 지구 상에 남을 거라 생각하면,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나는 죽어 기껏 쓰레기만 남기는 건 아닐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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