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정이 다 되어 가는 밤, 잠이 오지 않아 TV를 켰다가 마음에 쏙 드는 프로그램을 만났다. 부럽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여행생활자’라고 소개되는 유 성용씨의 ‘세계 테마 기행’이었다. EBS가 유씨와 함께 세계 곳곳을 다니며 그 곳 특유의 문화 유적과 역사, 예술, 정치 그리고 종교에 이르기까지 주어진 자연환경과 사람의 인심을 살펴가며 보여주는 아름다운 소설 같은 영상 기행이었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유명한 곳은 물론 개인으로서는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세계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소개하고 주어진 자연의 위대함을 비추어 주는 프로그램이다.
소탈하고 편해 보이는 호스트 유씨는 마음의 빗장을 열고 다닌다. 여행생활자이기 때문일까 부드러운 웃음으로 누구에게나 다가가 친구가 된다. 수줍은 듯한 속마음을 들켜가며 그곳 형편 이야기와 심정을 조곤조곤 들려주는데 정감이 넘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의 모습도 가히 걸작이고 건축과 마을의 형성구조도 그림엽서처럼 아름답지만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나는 관심이 많다.
척박한 곳에서 돌덩어리 땅을 쟁기하나로 일구어 온 멕시코 은광촌의 농사꾼 할아버지의 굵게 주름진 얼굴은 바로 우리네 농촌에서 흔히 보아왔던 낯익은 그 모습이다. 성긴 끈으로 얽은 베스킷에 작은 농구공을 던져 넣으며 맑은 웃음소리를 날리는 꼬질꼬질한 아이들의 그 순박한 얼굴 또한 어린 내 동생의 모습이고 내 이웃의 얼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아무리 다른 곳 다른 종족이라 해도 결국 삶의 진지한 현장에서는 누구나 같은 얼굴로 산다. 그래서 마음이 통하고 친구가 되고 웃을 수 있나 보다. 웃음은 같은 말을 하니까.
보태거나 뺄 것도 없지만 가리거나 꾸밀 것도 없다. 입은 그대로 먹는 그대로. 작고 초라한 할머니와 건장한 서른 여덟 살의 미스터 유가 함께 옥수수 가루를 반죽한다. 화덕에 토티야를 구워 식탁 없는 방에서 접시 하나씩을 쥐고 여기 저기 앉아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어쩌다 눈이라도 한번 마주치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선웃음을 손등으로 부끄럽다 가리는 그런 ‘촌티’ 나는 화면이 얼마나 정겨운지!
너는 너, 나는 나로. 갈라지고 엇갈려서 점점 외로워져 가는 이 시대에 이와 같은 삶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다. 좋은 생각이라는 책에서 보았다고 친구가 보내 준 글에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라는 글이 있었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처럼 쭈뼛거려지게 되어 간다 할지라도 웃는 얼굴 하나로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이 온 세상에 있는 한 삶은 아직도 꿈을 꾸기에 충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이라는 열쇠는 사람의 마음을 열고 조건 없는 행복을 불어넣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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