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The Kite Runner (연을 좇는 아이)를 심취해 읽었다. 최근 미국의 베스트 셀러로 영화화까지 돼 오스카 물망에도 오른 화제의 작품. 북가주 프리몬트로 이주한 아프가니스탄 작가, 칼레드 호세이니의 처녀작이다.
소설은 두 아프간 친구의 성장이야기다. 주인집 아들 아밀과 하인 하산은 함께 자란다. 이들은 동네 연날리기 명수들이다. 불에 휜 대나무 살 위에 얇은 종이를 촘촘히 입힌다. 연이 강풍에 맞서 매처럼 솟구쳤다가 곤두박질 쳐도 끄떡없이 실하다.
연은 소년들의 얼굴이요 자존심이다. 연줄 끊기는 동네간 전쟁이다. 실에다 잘게 빻은 유리가루를 풀로 입힌다. 그리고 바람 볕에 말렸다가 얼레에 감는다. 연싸움에서 이기려면 상대 연 위를 선점해야 한다. 아밀은 통줄주기의 고수였다. 실을 감다가 갑자기 탁 풀면 연 머리가 돌연 방향을 바꾼다. 순식간에 남의 연 위에 올라선다. 손가락에 연줄을 감아 퉁기면 마치 칼로 베듯 적의 실이 끊기는 감촉이 온다. 아밀의 검지에선 피가 튄다.
하산은 아밀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충복이다. 그는 아밀이 끊어버린 적의 연을 찾아 뛴다. 아무리 연이 멀리 날아갔어도 하산은 꼭 찾아내고 만다. 친구의 트로피이기 때문이다. 하산은 아프간의 천민 출신으로 배우지도 못했지만 아밀을 위해선 목숨까지 거는 헌신적 우정의 소유자다
그날도 아밀과 하산은 끊어버린 상대의 연을 향해 뛰고 있었다. 아밀이 천민 하산과 어울리는 것을 평소 증오해온 불량배 일당에게 쫓기게 된다. 아밀이 붙들리자 급히 되돌아온 하산은 고무새총을 불량배의 눈에 들이대고 친구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그러나 주인집 아들 아밀은 이기적인 비겁자였다. 하산이 불량배들에 붙잡혀 개처럼 능욕 당하는 날, 아밀은 그 처참한 현장을 목격하고도 겁에 질려 숨어버린다. 그 직후, 아밀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하산에게 도둑누명을 씌워 집에서 내쫓는다. 하산을 보지 않음으로 죄를 잊으려 했지만 아밀은 평생 죄의식의 노예가 된다.
소설은 반전된다. 아밀 부자는 소련 침공 직후 아프간을 탈출, 미국으로 이주한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생계를 잇는 전형적인 이민 생활이 시작된다. 허나 그 속에서도 아밀은 공부를 끝내고 소설가의 꿈을 이룬다. 아내도 맞는다. 그리고 조국을 다시 찾는다.
그때야 아밀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하산은 아밀의 생부가 하녀와 낳은 이복동생이었다. 그리고 하산이 아밀의 옛집을 지키다가 탈레반 들에게 무참히 살해된 사실도 알게 된다. 그 때부터 아밀은 속죄를 위해 몸부림친다. 고아원에 버려진 하산의 외아들을 필사적으로 구해낸다. 그리고 자기 아들로 입양한다. 비로소 아밀은 하산의 우정의 빚을 갚은 셈이다.
소설을 읽으며 연(鳶)이 주는 상징성을 내내 생각했다. 아마도 하산이 갈망했던 자유였을 것이다. 억압된 이슬람 계급사회 속에서 우정마저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는 그 속박으로부터의 탈출. 그 자유의 연을 찾아 달렸을 것이다.
더 크게는 조국 아프가니스탄의 자유를 향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중앙아시아 길목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BC 500년이래 끊임없는 외침에 시달려왔다. 페르샤 제국,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 아랍제국들, 훈족, 몽고족들의 혹독한 지배를 받았다. 근세에도 영국과 소련, 미국 등의 침공을 받으며 종파가 다른 부족들 간의 대립과 살상이 계속돼 왔다. 그 와중에 기형적인 이슬람 극단주의파 탈레반이 득세하면서 아프간 내전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만다.
이 숨막히는 포화 속에서 선량한 아프간의 아이들은 오늘도 자유의 연을 날리리라. 이념이나 종교보다 더 고귀한 인간 사랑의 끊어진 연을 찾아 달리고 또 달리리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