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 앞에 벤자민 트리를 심은 후 선교팀이 백 선교사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평소에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기 어려운 아이들은 영어 및 한글 수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섬마을의 이틀 째 새벽. 7월14일 월요일이다. 동물 울음 소리에 잠을 깼다. 연이어 모스크에서 확성기를 통해 기도 소리가 들린다. 불교 사원에서 질세라 경전을 읽어 댄다. 시차까지 아직 적응이 안된 상태에서 더 이상을 잠을 청하기는 불가능할 듯 했다. 모기장 안에서 이리 저리 뒤척이며 다른 사람도 잠을 깨기를 기다렸다. 임용우 목사가 구석에 놓인 책상에서 컴퓨터에 선교 일지를 남기는 모습이 보였다. 큰 차이는 없지만 깜뽕짬에서 잘 때 느꼈던 찌뿌듯한 느낌은 조금 덜 했다. 미국서 온 손님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한 분은 원주민 학교 교사. 자식들은 다 출가시키고 교육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공무원이라지만 봉급이 적어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상대로 캔디, 과자 등 간식 장사를 하고 있다. 하루 25센트 수업료를 낼 수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방문을 열고 교사가 정성껏 마련해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벌써 학교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변변한 놀이 시설이 없고 할 일이 없는 곳에서 외지 손님들이 영어를 가르쳐 주고 캔디를 주고 놀아 준다니 이보다 신나는 일이 없다. 식사를 마친 선교팀은 바로 아이들을 따라 학교로 갔다. 조금은 이른 시간인지 선선한 기운이 감돌지만 낮부터 얼마나 뜨거워질지 이젠 팀원들도 알고 있다. 어제는 반나절이었지만 오늘은 하루 종일 캠프를 열어야 하기 때문에 다시 몸과 마음을 다부지게 먹어야 했다.
마음에 새긴 눈망울들...
마음에 심은 희망의 나무
떠나는 배를 따라 한참을 뛰던 아이들,
그렇게 가슴아픈 이별은 찾아왔지만
고아원 마당에 심은 망고.벤자민 나무엔
먼훗날 풍성한 열매가 열릴 것을 믿으며...
뿌리칠 수 없는 아이들의 눈망울
전날과 비슷한 내용으로 영어와 한글 교육이 이어졌다. 변함없이 빨려들 듯 수업에 열성을 보이는 아이들. 대부분 초라한 차림에 맨발이지만 도시적인 감각으로 멋을 부리고 깔끔한 인상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어 신기하게 느껴진다.
쉬는 시간에 공을 몇 개 주면 풀들이 자란 마당에서 정신 없이 몰려다닌다. 몸이 날렵한 아이들이다. 벡키 교사와 다연이가 공기돌을 주워 시범을 보이자 아이들이 주위로 몰렸다. 전에 누가 가르쳐줬는지, 아니면 손재주가 있는 아이들이 금방 따라 했다.
백신종 선교사는 “이번 선교팀이 잠깐 머물지 않고 이틀씩이나 캠프를 열어 주니 아이들이 기대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백 선교사가 그렇게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어린애 하나가 슬쩍 다가오더니 바지를 잡아당기며 “이 분들이 내일도 올 건 가요?”하고 묻더란다. 선교팀은 겨우 몇 시간 아이들과 놀아주고갈 시간 밖에 없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텐데 아이들은 벌써 온통 마음을 주고 있었다. 그만큼 때 묻지 않고 순진한 아이들이었다.
섬마을에서의 일정을 다 마치고 선교팀은 다시 육지로 나올 채비를 했다. 아이들이 부둣가로 다시 따라 나왔다. 들어올 때 이용했던 통통배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옷을 입은 채 메콩강에 뛰어들었다. 누런 흙탕물과 검은 피부의 아이들이 조금 거리가 멀면 쉽게 분간이 되질 않았다.
배가 떠나기 시작하자 섬에 들어올 때처럼 아이들은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한 여자아이가 배를 따라 강가를 뛰기 시작했다. 선교팀이 나눠준 공책을 옆에 끼고 모슬렘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복장을 한 이 아이는 제법 먼 거리를 달렸다. 그리고 얼마 후 멈춰 섰다. 그렇게 가슴 아프게 아이들과의 이별은 다가왔다.
이날 따라 이상하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메콩강.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고치고 자맥질을 하는 어부들, 물가에 대어놓은 작은 배들이 스쳐가고 있었다. 주위 사물처럼 팀원들의 마음도 여러 가지 생각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그나마 위안이었다.
희망의 나무를 심다
7월15일 화요일과 16일 오전은 고아원 공사 돕기에 다시 투입됐다. 정문 페인팅을 마무리하고 건물 1층 창문에 달려 있는 철제 망에 칠을 해야 했다. 조경 전문가 도유진 집사와 홍덕기 장로 등 일부는 망고 나무를 사다 담장 안 쪽 주위에 심었다. 오늘도 덥기는 마찬가지. “우기라 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백 선교사의 말이 무색해지는 날씨였다. 다행히 팀원들의 몸도 조금씩 적응을 해가고 있었고 나름대로 더위를 피하는 요령도 터득한 듯 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많이 쓰는 파란색과 금색으로 정문을 칠해 놓고 나니 제법 품위있어 보였다. 아직은 작은 키지만 망고 나무도 몇 년 있으면 아이들의 쉼터가 될 것이다. 팀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진행되고 있는 성광고아원 건립 사역에 동참하는 것을 큰 특권이라 생각하는 듯 했다. 페이팅을 하느라 미처 직접 식수를 못했던 벡키 리 교사, 김다연양 크리스티나 멕베이, 그리고 본보 기자를 위해 다시 구덩을 파고 나무를 심을 기회가 주어졌다.
선교팀의 방문을 공식 기념하는 나무는 고아원 건물 정면 마당에 심기로 했다. 곧고 잘 생긴 벤자민 트리를 골랐다. 잠깐 다른 선교지를 방문한 임 목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도유진 집사가 능숙한 솜씨로 큰 구덩이를 팠고 다른 분들이 도왔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백 선교사 팻말을 만들어왔다.
‘기념식수(Ceremonial Planting), 2008년 7월16일 워싱턴성광교회 제1차 캄보디아 단기선교 일동, 담임 목사 임용우 외 9명, 사역-망고나무 44 그루, 벤자민 나무 12 그루, 철문 및 1층 철창 페인트.’
모든 봉사는 이것으로 마무리 됐다. 그러나 망고 나무와 벤자민 트리가 고아원에만 심겨진 것은 아니었다. 팀원들의 가슴에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으로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캄보디아가 자랑하는 ‘앙콜 와트’ 유적이 있는 씨암리엡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피곤을 이기지 못해 잠에 떨어지는 팀원들... 이들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 망고 나무와 웅장한 자태의 벤자민 트리를 벌써 꿈꾸고 있었다.
<이병한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