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삭막한 일상과 너절하고 하찮은 것에의 집착, 그리고 모든 형태의 악취미에 대하여 선전 포고를 하련다” 오스트리아 작가인“ 헤르만 바르((Hernann Bahr,1863-1934)”의 말이다. <비엔나 분리파>의 정신적인 역활을 담담했던 그의 말은 모든 생활의 국면에서 예술을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말하는 말이다. 즉 모든 것,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모든 생활을 아름다운 예술로 만들겠다는 비장한 말처럼 들린다. 삶 자체를 좀 더 품격화 시키겠다는 그의 선전포고.
내가 왜 이말이 떠올랐을까?
아마도 친구로 부터의 전화때문이 아닌가 싶다.
애 둘 키우랴, 식당 운영하랴, 정말로 나름대로 애쓰며 살아가는 이 친구한테 남편은 늘 “ 당신 잘하는 것이 뭐 있어” 하고 늘 핀잔을 준다며 의기 소침해 있는 그녀 때문이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부분에서 언어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에게, 혹은 아내에게, 이웃으로 부터, 상사로 부터 등등…
아마도 헤르만 바르가 우리의 대화를 들었다면
위의 말을 “ 우리는 삭막한 농담과 너절하고 하찮은 말, 그리고 모든 형태의 거친 표현에 대하여 선전 포고를 하련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찰나의 세상을 아름답게 속삭이며 서로에게 품위를 부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겠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작은 칭찬 한마디가 고래도 춤추게 하고
“한마디 말로 천냥 빚도 갚는다”라는 우리의 좋은 옛말이 있지 않는가!
얼마전에 친구부부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 남정네들의 거친 표현력이 도마에 올랐는데(이건 순전히 여자들 입장임)
아주 작고 사소한 남편들의 거친 말 한마디가 부부의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아내들을 슬프게 한다고 하였다.
물론 남자들은 통계에 의하면 명령조의 이야기를 아무 생각없이 주로 한다고 한다. 즉 “ 밥안줘?”, “ 신문 갔다줘 “ 라며 부정적인 표현이나 명령조의 말을 듣는 것을 아내들은 싫어한다는 것을 잘 감지를 못하는 것같다.
친구 남편은 친구가 밥을 잘 먹는 것을 보고 “당신은 돼지처럼 밥을 잘 먹네”라고 말한다고 섭섭해 한다. 이럴때 “당신은 참 복스럽게 밥을 먹어”라고 말하면 아마도 고등어 구이 한마리가 더 밥상에 올라가지 않을까?
더더구나 “밥 잘먹었어 수고했어 고마워” 라는 말 몇마디를 더 보태면 살이 오동통 오르고 노릿노릿하게 구운 영광 굴비 한마리가 더 밥상에 올라갈텐데 말이다.
또한 시집가서 아들을 낳아 모처럼 친정 나들이 한 딸에게 사위 보는 앞에서
“너도 이제 얼굴이 많이늙어가는 구나” 했다고 친구는 서운해 한다.
물론 남편의 의미는 딸이 성숙해진 여인처럼 보인다는 뜻인것을 알지만 그 표현력이 서툴러서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상대에게 섭섭한 마음을 주는 것이다.
아침에 좋은 칭찬 한마디 들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그 기분은 바로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한 방울의 이슬이 떨어져 시냇물이 되고
음계 하나하나가 모여 교향곡이 된다.
자그마한 속삭임이 사랑을 나누고
살푸시 웃는 미소에 신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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