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과거의 시간부터 계속 되어온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람이있다. 나는 그 바람을 따라, 그 바람이 휘몰아가는 기류에 휩쓸려 영원히,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처럼, 달려나간다, 나는 어느덧 Z차원, Z의 세계, 나와 아무런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는 듯한 세계를 만나게 된다.
-메디슨 카운티 의 다리 중에서-
젊다기엔 너무 세상을 많이 살았고, 그렇다고 인생의 모든 슬픔과 기쁨의 감정들을 포용하고 관조하는 그런 나이가 되기에는 너무나 젊은 우리들.
언덕에 올라가서 지천에 수없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꽃들을 보았어. 보아주는 이 없어도 제 각각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면서 흔들거리는 무수한 꽃들을 바라보면서 세상은 정말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도 생각했어.
하나의 세계를 다른 눈이지만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느낄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세상은 값어치가 있다고도 생각했어.
피부에 스치는 바람과 꽃향기, 그리고 어디론가 흘러간다고 말 하지 않고 그저 움직이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세상은 무한히 아름답다고도 생각했어.
그런데 친구야,
때로는 빛 가운데 어둠을 느끼고 침묵 속에서 소리를 듣듯이 우리의 저가슴 밑바닥속에 강물처럼 흐르는 이 슬픔은 무엇인가 말이야.
우리의 인생이 때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처럼 가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바람에 돛을 맡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배 같아서. 괜히 서글퍼 지는 우리.
서울에서 온 손님을 치루고 그들을 공항에 내려놓고 돌아서면 아! 그들은 그들의 나라, 아니 나의 나라, 우리나라 말을 맘껏 쓰는 곳으로 돌아가는데 우리는 이 낯선 곳에 남아서 태평양의 거센 바람이나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
이런 저런 모임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밤 길에는 왜 이렇듯 마음이 헛헛하여 유행지난 사랑 노래나 크게 틀어놓고 소리나 질러대는 우리.
때로는 밤이면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몽유병 환자처럼 서성거리는데 옆에서는 코를 골면서 자는 한 낯익은 남자가 낯설어 보이는 우리.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우수수 낙화하여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보겐빌의 꽃송이들을 보면서 삶의 무상함에 서성거리는 우리.
밤 하늘에는 손에 잠힐듯이 별들이 가까이 있는데 손을 들고 휘이 휘이 저어 보아도 잡히는 것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바람뿐.
차라리 누워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눈물이나 주루룩 흘리는 우리.
우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무나 하찮은 나의 인생이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 잠깐 보였다가 사라지는 환영의 신기루처럼 허무하기만 해서 가슴이 시린 우리.
그런데 친구야,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고 나면 햇살이 구름 사이에서 쏟아지듯이 이렇게 지독한 중년의 홍역을 앓고 나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그대는 내 앞에 나는 그대 앞에 서 있을까.
“이제는 돌아와 국화 앞에선 누이”처럼 그런 모습으로 서 있을까?
그 누가 그랬던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이 아픔도, 이 슬픔도, 이 허허로움도 또한 지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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