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사회에서 20세기초에 두가지 주장이 있었다. 백인 사회에 참여해 그들의 말을 듣고 교육을 받은 후 먼 훗날에 정치력을 기르자고 한 Booker T. Washington 과 정치력을 먼저 키워 백인 사회와 맞서 자고 한 W E B Dubois 였다. 이두가지 사상을 잘 조화시킨 이념이 도산선생이 주창한 무실역행이라 한다. 도산 선생의 지도자로 크게 활약 할때 마틴 루터 킹목사는 9세 소년이었다고 한다.
미국 전역에 민권 운동을 취재한 이경원기자는 도산선생을 민권운동에 세계적인 지도자라고 주장했고, 우리도 관객석에서 찬사를 보냈다. 마음 뜨거워지는 것을 그의 강연을 통하여 경험 하게 되었다. 나도 미국에 오래살며 민권운동 강연 할 기회도 있었지만 도산선생을 인용 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는 또 이분이 우리의 “간디”라고 역설한다. 등잔밑이 어두운것을 우리는 진작 깨닫지 못하고 진리는 먼곳에서만 찾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반문 해본다. 21세기 글로발시대에 우리만 알고 있으면 되는게 아니다. 구슬이 세말이라도 꿰야 보석이라는 우리 옜말이 있다. 우리 주위에 알리고 그의 영어로된 논문이 더많이 나와야 된다. 주류 신문에 영어로 기고도 많이 해야 될겄이다.
참 우리는 할 이야기가 많다. 흑인들의 민권운동의 적극적인 시작을 연방 대법원이 1954 판결한 Brown v. Board of Education 에근거를 둔다. 흑인의 교육은 백인과 분리하되 동등하게 해야된다는 ‘separate but equal’이라는 독트린에서 유래 한것이다. 당시의 흑인 지식층이 단합하여 이루어 낸것이 1964년의 연방 민권법이다.
역사를 따진다면 1930년대 샌프란시스코 배이 지역 교육청에서 한국여학생을 백인 학생과 교육시킬수 없고 피부색이 같은 차이나 타운 학교에 가라는 결정에 반기를 든 한국 가정이 있었다. 부모가 소송을 하여 이겼는데 미국 민권운동사에는 전혀 언급이 되지 않은 사건이다. 십 몇년전 읽은 것을 지금 여러 여러 가지 통로로 찾고 있는 중이다. 지금 우리는 정치적인 힘을 길러야 할때다. 우리의 주류 사회정치 참여를 2세가 자랄때 까지 기다리지 말고 영어가 좀 부족 하더라도 1세들의 적극적인 참여 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아까운것은 당시 도산 선생이 창설한 국민회의 전통이 계속되지 못한것이다.
역사적인 인물인 Booker T. Washington이나 W E B Dubois 그리고 마틴 루터 킹 같은 이들은 살아있는 미국사람들과 함께 호흡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지도자로 만드는 것은 우리 책임이다.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에서 1963년 킹목사의 I have a dream 을 인용했다. 운동경기장에 뫃인 8만여명 청중이 물을 끼엊은 듯 조용하다. 여러해 후에 어떤 대통령 후보가 도산의 무실역행을 인용할날을 우리는 준비 해야 될 것이다. 세샤 샤베즈가 그랬고 여러 흑인 지도자들이 미국에 대한 꿈과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오늘날 백악관 문턱에 서 있는 모습을 본다. 몇십년 앞을 바라보는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의 마음도 설랜다. 도산선생의 사상을 주류 사회에 알려야 한다. 우리가 할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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