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달이 뜬 지난 주말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파티가 잇따라 벌어졌다. 한가위 잔치가 아니었다. 시애틀 심포니(SSO)의 전용 연주장인 베나로야 홀에서 13일 저녁 수백 명이 송편 아닌 울프강 퍽 식당의 케이터링 요리를 즐겼고, 추석날엔 온종일 노상파티와 함께 베나로야 홀과 시애틀 미술박물관을 중심으로 50여회의 무료 공연이 펼쳐졌다.
이 잔치는 SSO가 금년시즌 개막과 베나로야 개관 10주년을 함께 맞아 곱빼기로 벌인 경축행사였다. 특히, SSO를 4반세기나 지휘해온 제러드 슈워츠(61)가 ‘3년후 은퇴’ 결심을 발표한 직후여서 잔치의 의미가 더 컸다. 슈워츠는 SSO를 세계적 오케스트라로 키웠을 뿐 아니라 환상적 음향시설을 자랑하는 베나로야 홀까지 마련한 일등공신이다.
줄리아드 출신으로 뉴욕 필하모닉에서 한 때 트럼펫을 분 슈워츠는 1983년 SSO에 자문역으로 동참했다. 그는 지휘자 레이니어 미델이 사망한 다음 해(1984년) 수석지휘자로 발탁됐고 1985년부터 지금까지 음악감독을 겸해왔다. 그가 결심한 대로 2011년 사임하면 미국 오케스트라 사상 ‘최장기 집권’(26년)한 음악감독(지휘자)으로 기록된다.
105년전 단원 24명의 앙상블로 출발한 SSO는 슈워츠가 지휘봉을 잡은 1984년 이후 상전벽해의 발전을 이뤘다. 티켓 정규구입자가 5,000명에서 35,000명으로, 연간예산이 500만 달러에서 2,200만 달러로 늘었다. 단원 봉급도 500% 인상됐다. 발표한 음반이 125개나 됐고 그중 11개는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베나로야 홀의 시애틀 심포니’라는 TV 특집물로 에미상을 받았다. 한 시즌(9월~다음해 7월)에 평균 31만5,000명의 청중을 유치한다. 시애틀 인구(57만8,700명)로만 치면 두명 중 한명 꼴 이상이다.
‘마이스트로’(명지휘자) 슈워츠에게도 약점이 있다. 단원들과의 불화이다. 그가 해고한 터줏대감 일카 탈비(콘서트마스터)와의 싸움은 특히 치열했다. 2년전엔 다른 단원으로부터 소송도 당했다. 그가 지난 10일 은퇴결심을 발표하자 환호성을 올린 단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이런 약점은 베나로야 홀을 설립한 공로만으로도 너끈히 탕감된다.
SSO는 1903년 12월29일 크리스텐센 홀에서 첫 연주회를 가진 후 무어극장, 메트로폴리탄 극장, 미니 홀(UW), 옛 오페라하우스 등을 전전했다. 마이 홈 마련을 위한 킹 카운티의 특별징세안 마저 1991년 부결됐다. 셋방살이가 지겨웠던 슈워츠는 기업가이자 자선가인 잭 베나로야 부부에게 헛일삼아 통사정했다가 종자돈 1,500만 달러를 쉽게 받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슈워츠와 이사회가 1억 달러를 모금했다. 놈 라이스 당시시장이 다운타운 활성화를 위해 제공한 2가와 3가 사이의 버려진 경사지에서 1년 365일 공사가 이어졌다.
유명 건축가 마크 레딩턴의 설계로 총 1억3,630만 달러를 들인 건물이 1998년 9월 완공됐다. 기차터널 위에 세워졌지만 진동도, 차량소음도 전혀 없다. 베나로야의 이름을 붙인 건물 안에 주 연주장인 ‘S. 마크 테이퍼 강당’(2,500석)과 ‘노즈트롬 리사이틀 홀’(540석)이 있다. 주 연주장은 음향 울림효과가 카네기 홀이나 케네디센터 못지않다. 이곳에서 그동안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프리마돈나 조수미가 한국일보 후원으로 각각 두 차례 공연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새라 장의 SSO 협연도, 대전시향의 본보후원 순회공연도 펼쳐졌다.
가을은 문화의 계절이다. 한인들도 베나로야 홀을 찾아가 ‘마이스트로’와 일류 오케스트라의 멋진 연주를 한번쯤 감상해봄직하다. 바쁠수록, 불경기일수록 그렇다. 스트레스 해소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미국적인 ‘삶의 질’을 누리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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