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 ‘다위쉬’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는 자기 민족, 곧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압박과 설움을 대변하는 대표시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쓴 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 시에서 ‘너희들’이란 물론 이스라엘을 말한다.
“기록해 두어라
너희들이 포도원을 도적질했다는 것을....
우리 조상의 포도원 말이다.
그리고
땅을 도적질 했다는 것을....
자손들과 함께 갈아 먹을 땅 말이다.”
이 몇 줄만 읽어 보아도 피를 토하는 시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자기네들 땅을 강점한 데 대한 분노를 불로 뿜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스라엘의 사리드라는 교육부 장관은 바로 이 적국의 시를 고등학교 교과서에 싣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의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 전국이 시끌시끌했을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 나라 실권자인 총리부터 보수적인 정당, 교육계, 학계, 그리고 일반국민과 학부모들이 아우성을 했다. “교육부 장관이 간첩이 혹시 아닌지 사상검토를 해라”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고 판단력이 성숙하지 못한 고등학생에게 어찌 감히 그런 시를 가르친단 말이냐” “이스라엘 국민의 정신무장을 일방적으로 해제하는 일이다” “그 포도원과 땅은 원래 우리 조상의 것들 아니냐” 등등 비판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게 되었다.
그러나 사리드 교육부장관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적국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국민과 손금 보 듯 훤히 아는 국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강하겠는가?” 그렇게 항변했다. 손자병법으로 표현한다면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뜻이다.
그 팔레스타인의 애족시가 이스라엘 고등학교 교과서에 게재되었는지 아니면 끝내 거부되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국의 시를 가르치겠다는 논쟁은 이스라엘에서나 있었을 뿐 팔레스타인에서는 전혀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다 혹은 우편향이다 하며 논쟁이 뜨겁다. 햇볕정부와 전교조가 왼쪽으로 돌려놓은 시계추를 이명박 정부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려놓으려 한다. 말하자면 역사관의 충돌이요 정확히는 역사 교육관의 싸움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말 유감스럽다. 이것은 역사가 무엇이냐, 그리고 또 교육이 무엇이냐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바른 대답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갈등일 뿐이다. 역사는 보수의 흐름도 있고 진보의 흐름도 있으며 중도 통합의 흐름도 있어야 발전하게 된다. 마치 새들이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는 물론 몸통과 머리까지 함께 사용해야 훨훨 날아다니는 것과 같은 이치란 말이다. 만약 한쪽 날개가 부러지면 씽씽 날던 비행기조차도 갑자기 추락하지 않던가.
교육으로 말하더라도 그렇다. 학생들에게 빛에 관하여 가르치려면 반드시 어둠에 대하여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빛과 어둠 사이에 있는 희색지대에 관하여서도 가르쳐야만 바른 교육이 된다. 물론 빛, 어둠, 희색지대 사이의 선택은 학생들의 몫이다.
그런데도 역사교과서의 좌편향·우편향의 싸움이 있는 걸 보면 역사교육에 관한 한 아직도 한국은 개발도상국가에 속하는 것 같다. 교육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면 과감히 적국의 역사관도 가르치겠다는 시민적 합의가 어서 속히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 곳에서는 좌편향·우편향의 역사교육 논쟁조차 아예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교육 역시 저개발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한국은 이스라엘이고 북한은 팔레스타인이라 했던가. 테러국가라는 오명도 벗었으니 이제 우익과 좌익의 논쟁도 허용하는 것이 어떨까.
이정근
유니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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