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구경을 하기 힘든 이곳에서도 가끔은 단풍이 곱게 든 아름드리나무를 보게 된다. 가을부터 푸르러지는 잔디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붉은 낙엽과 온 잎사귀가 불을 밝힌 듯 붉게 물든 나무를 보게 되면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늘 푸르른 상록수보다 낙엽수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변화의 과정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나무의 모습이 좋아서다.
인간의 모습도 매한가지다. 유아기, 소년기, 사춘기, 청년기, 장년기, 갱년기, 노년기 등 많은 과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사춘기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격정적인 사춘기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사춘기 때 법구경을 끼고 다녀서인지 나는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지냈다. 사춘기가 얼마나 힘들고 거센 파도와 싸워 이겨야 하는지는 나의 아들이 가르쳐 주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도 너무나 힘들어서 어떤 때는 발을 뻗고 구르며 울기도 했지만 제 정신으로 돌아오면 저는 또 얼마나 힘들까하는 애처로운 생각에 그 시기를 견딘 것 같다. 나야 어른이라고 조금 더 지혜롭고 조금 더 잘 참을 수 있는데 아직 여물지 못한 자기의 그릇에 그 모든 것을 집어넣고 소화시키느라 오죽 힘들까, 여물지 않은 그릇에 친구와의 나, 가족과의 나, 세상과의 나-내 안에 너무도 많은 나를 정리하고 있자니 얼마나 부대낄까하는 마음에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는 소리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밤에 몰래 들어가 혹시라도 잠이 깰까봐 이불 끝자락을 붙들고 잘 견뎌내라고 기도하기도 했었다. 아들의 사춘기가 끝나간다는 것을 느낀 것은 눈빛 때문이었다. 어느 날 불만 가득한 눈빛에서 힘이 빠지더니 엄마를 포옹하기도 하고 뽀뽀까지도 해주는 아들을 보면서 견뎌냈구나 이제 더 지혜롭고 듬직한 아들이 되겠구나 자랑스러웠다. 그 힘든 과정에서 찌그러지지 않고 무릎 꺾였다고 땅에 엎어져버리지 않고 일어섰다는 것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한국학교에서 맡은 반들이 항상 제일 윗반이어서 많은 사춘기 아이들을 만났었다. 내 자식을 보는 듯하니 그 아이들도 사랑으로 보듬으며 잘 견디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이번에 맡은 반 아이들은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들이 몇 명 있는 조금 어린 학생들의 반이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들의 표정은 늘 한결같다. 불만스럽고 짜증나며 반항기가 있다는 것. 이젠 눈빛만 봐도 어느 과정을 겪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가을 학기가 시작되고 방학 사이에 쑥쑥 커서 온 아이들을 보다가 한 녀석이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알아챘다. 숙제도 빠짐없이 해오던 아이가 눈을 치켜뜨며 안했는데요, 한다. 수업 시간 중에 한국학교 끝나는 날이 언제냐며 김을 뺀다. 일기에는 부모가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시킨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뭐든 하기 싫다는 소리만 있다. 그래도 선생님은 너를 사랑한다는 눈빛으로 웃으며 바라본다. 휘리릭 등을 돌리며 나가는 그 학생의 등을 눈으로 어루만지며 잘 견뎌내….견뎌내는 거란다,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00야, 저 아름드리나무처럼 낙엽을 떨어뜨리고, 찬바람을 맨가지로 견디고, 벌레에 먹히고….그러면서도 견뎌내는 거란다. 잘 견뎌낸 뒤 웅숭깊은 눈빛으로 웃음 지으며 다가올 너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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