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리스트를 두루마리로 작성해서 카트 가득가득 실어가며 쇼핑을 다녀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다행인 한 편 서운함이 느껴지는 시즌이다. 트리 밑에 선물을 산처럼 쌓아놓고, 이건 뉴욕 사는 할머니가 이건 오레곤 사는 삼촌이 이건 텍사스 사는 이모가…뭐 이렇면서 크리스마스 아침에 파자마 차림으로 하나씩 하나씩 풀러보는 재미를 일 년 내내 손꼽아 기다렸을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쯤 다른 우리네 아이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비록 저렴하고 작은 물건이라도 여러 개를 사서 포장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이들을 아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하겠다는 욕심이랄까.
블랙 프라이데이.
모든 가게들이 크리스마스를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때다.
신문 갈피에서 쏟아져내린 가게 전단지들은 얄팍한 신문 쪼가리에 다 담을 수 없는 방대한 세일정보를 경쟁하듯 토해낸다. 유난히도 늦게 열고 일찍 문닫는 미국 가게들, 한 술 더떠서 밤마실 다니기 좋은 주말에는 어떻게 된 게 더 서둘러 문을 닫는 바람에 몇 번씩 허탕치게 만들더니만 추수감사절이 뭔지 이 맘 때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각에 가게 문을 열고 사람들을 새벽 서너시부터 이불 속에서 불러낸다.
‘보면 다 사고싶지, 나가면 돈만 쓰지.’
이런 나의 모토도 이 즈음이면 한 번씩 무너져내린다.
선물 대상과 품목과 예산을 짜는 일들에서, 나는 늘 예외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몇 가지는 사러 나서야 하니 역시 쇼핑 시즌이 맞긴 한가보다.
우선 아들 놈들 선물을 사야겠고(아직 Dear Santa 로 시작하는 wish list를 열심히 작성하는 나이라 선물은 언제나 보안을 유지하며 이중으로 준비해야 한다) 한국에 보낼 조카 선물도 골라야 겠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줄 선물도 준비해야 한다. 잡지에서 봤더니 제발 향초, 목욕용품, 초컬릿, 머그컵은 그만 주세요 하고 고함을 지르더군. 학부모가 되기 전에는 스승의 날이 제일 중요할 줄 알았는데…
여선생님에겐 동네 구멍가게에서 산 비둘기색/ 커피색 스타킹을, 남선생님에겐 까만 양말을 선물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스승의 날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엄마가 스승의 날 학교 근처에만 왕림해도 온 교실이 술렁대던 시절. 우린 모두 대체로 평범하게 가난했던 것 같다. 그런 제각각의 작은 선물을 받아들었던 선생님은 특별히 고마워 하거나 기뻐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일 년이면 단 하루, 선물을 한 보따리 안고 가는 선생님이 부러워서, 실은 그 선물이 무지 부러워서, 나중에 커서 선생님 될까 하는 철 없는 생각까지 다 했었는데.
비싼 선물 더구나 촌지따위는 감히 통용되지도 않는 미국이라고 아직까지는 굳게 믿고 있기에, 크리스마스 선물 역시 20불 안팎의 커피나 서점 상품권으로 적당히 마무리한다. 여력이 된다면 쿠키를 넉넉히 구워서 상품권에 함께 들려 보내고, 나머지는 우체부 아저씨나 주변 사람들에게 주면 되겠다. 엄마가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나 신문/우유배달원에게 조금씩 챙겨주었던 한국에서처럼 말이다. 그렇게 무사히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나면 다음 날 나가서 할인의 절정인 크리스마스 용품을 좀 사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예산을 세우고 보니, 아… 예정없던 지출에 조금 우울해진다. 그렇지만 행복을 두루두루 나눠주는 기쁨이야말로 내가 몇 곱절로 돌려받는 선물이란 생각, 변함없이 날 흐뭇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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