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떤 거 먹을 꺼야? 난 초록색!” “난 이거 빨강 색!”
사내 녀석 두 놈이 흡족한 얼굴로 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고 나면 드디어 내 작업이 시작된다.
언제나 누가 먼저 시험대에 설 것인가로 옥신각신 하지만 결국은 숱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리는 큰 녀석이 늘 ‘먼저 맞는 매’를 선택한다. 이젠 손에 익을 때도 되었건만 어쩌면 매번 할 때마다 엉성하고 어설픈건지. 짧은 남자 아이 머리가 언뜻 쉬울 것 같아도, 이쪽 저쪽 귀 언저리를 나란히 파 줘야 하는 균형 감각과(짝짝이가 되버리기 십상), 뒷부분을 적당히 깎아 올려야하는 자제력(어느 순간 윗뚜껑만 남기 십상)이 요구되는 고도의 기술이 바로 이발인 것임을!
나는 유학생 남편의 전담 미용사였다. 십 년 넘게 키우던 강아지 털 한 번 잘라본 적 없던 내가 막바로 인간에게 손을 뼏쳤으니 그 무모함이란. 하지만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는 뻔뻔함과 아껴보자는 궁색함보다 더 정당한 이유가 어디 있을까. 서투른 솜씨로 한 시간씩 붙잡고 있다보면 서로 부글부글 끓기 마련. “야, 좀 빨리 할 수 없어?” “하고 있쟎아 지금.” “매번 이렇게 오래 걸리면 어떻게 하냐? 게다가 결과도 엉망진창.” “뭐? 누군 좋아서 해? 고마운 줄이나 알아!”. 이렇게 말이 오가다 결국은 관 둬, 안 잘라, 그래 관 둬라 난 아쉬울 거 하나도 없네, 하면서 손 탁탁 털고 일어난 적도 여러 번. 그래서 남편 머리에선 모자가 떠날 날이 없었다.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는다. 벌이가 생겨서라는 거만한 이유도 있겠지만 회사라는 공간의 이목 때문이지 싶다. 한국에 비하면 너무 비싼, 그래도 그나마 샴푸비까지 따로 챙기는 미국의 beauty salon 보다야 낫지만, 아직도 미장원 문턱은 높게만 느껴진다.
한국 떠나 그리운 것 중 하나가 미장원. 그래서 어쩌다 한국 갈 기회가 생기면 저렴하고 가까운 동네 미장원부터 먼저 찾는다. 머리에 뼈다귀를 빼곡하게 품고 분홍색 수건으로 또아리를 틀어올린 채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가체 머리 얹은 조선 여인네처럼 일순 정숙하고 단아해진다. 다시 시간 반쯤 있다가 집을 나선다. 아파트 단지를 두 개나 가로질러 종종걸음 친다. 괜히 창피하다.
내가 여대 앞 미용실에서 타다주는 커피 홀짝이며 잡지 뒤적거릴 때, 엄마는 의자 두 어개로도 미어터지는 동네 미장원에서 머리를 말고 분주히 집을 오갔겠지. 나른히 누워 내 머리를 감겨주고 말려주는 손길을 느낄 때, 엄마는 엄청난 약 냄새를 풍기며 돌아와 머리감고 드라이 했겠지. 그 때 엄마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어 우울해진다. 엄마에게 한 번도 그 값비싼 서비스를 해드리지 못했다. 그런 건 젊은 나한테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걸까.
가끔씩 야매를 찾아 머리를 자른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땐 직접 가위를 들이대기도 한다. 나에겐 별로 상관없다. 어차피 질끈 묶을 테니까. 미장원 문을 열고 나설 때의 그 신선한 느낌. 나라고 왜 안 그리울까. 성형 수술을 하면 이만큼 기분이 좋을까싶게. 어깨에서 찰랑거리는 혹은 탱글거리는 머리카락이 주는 알싸한 쾌감같은 거.
파르라니 깨끗하게 밀어진 아이들의 뒷목 언저리를 바라보는 기쁨을 앞으로 얼마나 더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사탕이 더 이상 안 먹히는 나이가 될 때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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