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재 박사(한국문인협회 샌프란시스코지회장)
2008년 무자 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한해의 마지막 달은 내가 살아온 순간들이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펴지고 접히는 그 갈피 사이사이에 수많은 사연들이 담긴 삶의 소리를 다시 들어보는 시간이다. 더구나 언제부터인가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많아지면서 그 쓰고 달던 사연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조용히 소리 내면서 메아리 쳐 옴을 느끼게 되면서 돌아보는 시간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하나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나의 가슴을 울리고 세월을 돌려놓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어쩌면 삶의 순간들을 담은 세월이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세월 속에 사는 우리가 가고 오고 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월이 덧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나의 삶이 덧없는 것으로 믿어진다.
내 자신만이 살아온 삶의 소리를 듣고, 내 혼자만이 그 시와 노래를 이해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소리들은 오늘도 세월의 길을 따라 바삐 걷고 있는 나에게 밤에만 흐르는 강물처럼 꿈속에서 들리고 있었다. 비오는 가을밤엔 바이올린 독주같이 애절하게 들렸고 화창한 봄날에는 우렁찬 화음으로 퍼져 나왔다.
이 지나온 삶의 소리들을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해지는 것은 단지 지나간 삶에 대한 후회보다는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는 아쉬움이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삶의 여정에서 기쁨은 사랑의 미련으로, 눈물은 슬픔의 아쉬움으로 자리 잡은 소리들이 하나의 시가 되고 음악이 되어 나에게 다시 들려오고 있었다. 계절의 뒤안길에서 꽃이 피고 지듯 우리인생은 이상과 현실의 꽃이 피고 지는 그 앞뒤의 갈피에서 성숙되어 왔었다고 생각된다.
아름다운 동요가 지나간 세월의 갈피 첫 장을 장식하였고 가슴을 찢는 비참하고 애절한 소리들이 내 삶의 다음 갈피들 중간에 있었다. 우렁찬 북소리 나팔소리가 하늘을 진동하듯 울리는 삶의 소리는 그 다음을 이어 나왔고 이제는 가야금소리 같은 서글픔이 삶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모든 음악은 어디까지나 내가 작사 작곡하고 내가 부른 노래이니 어느 누구에게도 탓할 수 없는 나의 것이요 결과이며 나의 책임이다. 이 모두가 나에 의해서 나를 위해 부른 삶의 노래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상을 접고 현실을 따라 외도하다시피 살아온 삶의 소리가 그렇게 아름답게만 들리지 않을 수도 있었고 이상의 날개를 펼치며 불러본 노래는 처절하게 실패작으로 끝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 모든 소리들이 오늘에 와서야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래서 나는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을 남긴 추억의 소리는 먼 훗날 아름답게 들린다고 믿어본다. 내 주변에서 나와 함께 걷고 나와 함께 같이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른 사람들이 가고 없는 날에는 더 많이 듣고 싶어지는 소리들이다.
새해에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갈피 사이사이를 더욱 아름답게 꾸며보고 싶어진다. 초심의 바탕에서 꾸밈없는 삶의 그림을 그려야겠다. 너무 늦기 전에, 아쉬움을 남기기 전에 아름다운 시와 음악으로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느껴진다. 먼 훗날 내가 모아둔 삶의 소리들을 후회 없이 들을 수 있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또 한 장 인생의 갈피를 넘기고 있다. 또 한해를 보내면서 아쉬움 속에 눈을 감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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