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내 한우의 아버지 ‘씨수소’의 늠름한 모습. 농협 한우개량사업소에서 키워지는 보증씨수소 48마리로부터 인공수정을 통해 한국에서 태어나는 97%의 송아지가 생산되고 있다. <연합>
2009년 새해 기축년(己丑年)이 밝았다. 올해는 소띠 해다. 소는 성실과 근면, 끈기의 대명사인 동시에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다. 큰 덩치 때문에 가끔 아둔하고 미련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이는 충직함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소때 해를 맞아 소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보자
농경사회 힘든 일 도맡아 농가 살림의 최대 밑천
우직함 표시 ‘황소고집’ 꿈 속 암소는 ‘복덩어리’
소는 다른 동물에 비해 덩치가 크고 움직임도 느린 편이다. 개나 고양이에 비해 사람 말을 잘 알아듣는 편도 아니다.
그래서 ‘쇠귀에 경읽기’며 ‘황소고집’이라는 말이 사용되는가 하면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는 식으로, 적어도 이 땅의 소들에게는 치욕스런 속담도 생겨났다.
이처럼 우리 일상생활에서 소는 우직함과 고집, 그리고 때로는 아둔함과 미련함의 상징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문화에서 차지하는 소는 근면함과 유유자적의 대명사였다. 나아가 동물 중에서는 우리와 가장 친근한 존재이기도 하다.
농경사회였던 우리 민족에게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전통 농경사회에서는 힘든 농사일을 도맡아 하던 주역이요, 풍요와 힘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소는 부를 불러오고 화를 막아주는 존재였다. 농가 밑천으로는 소가 최고의 자산이었으며 이사한 뒤나 동제를 지낸 다음에 소뼈나 소고삐를 매달아 둔 것은 나쁜 귀신의 범접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꿈 중에서도 소꿈은 조상, 산소, 자식, 재물, 협조자, 사업체, 부동산을 상징하니 ‘소가 문밖으로 나가면 간사한 일이 생긴다’거나 ‘누렁소나 암소가 들어오면 복이 들어온다’, ‘소꿈은 조상꿈이다’는 속담이 이에 해당한다.
소는 이런 존재이기에 소가 새끼를 낳을 때는 신이 도와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소삼신’이 바로 그 것인데, 소가 새끼를 낳으면 왼새끼 줄에 백지를 매달아 1-3일간 대문이나 외양간 앞에 놓기도 했다. 이는 상가를 다녀온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소가 우리 민족의 일상과 얼마나 가까운 동물이었는지는 일찍이 고구려 고분벽화와 신라 토우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소는 달구지를 끌고 가거나 외양간에서 한가로이 여물을 먹는 모습으로 발견되는가 하면, 견우직녀 이야기를 형상화한 그림에서는 견우가 끄는 동물로 등장하며, 농사신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파사왕 5년(서기 84년)에 고타군수가 푸른 소(靑牛)를 바쳤다는 기록이 보인다. 푸른 소는 흔히 노자(老子)가 타고 다니는 동물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한 기록이다.
삼국시대에 발견되는 소의 다양한 이미지는 조선시대 선비사회에서도 대체로 비슷하게 발견된다.
소는 우직하고 순박하며 여유로운 천성을 지닌 동물로 인식된 까닭에 선비들은 각별한 영물로 여기곤 했다. 그런 흔적은 소를 소재로 한 시문이나 그림, 고사가 많이 남아있다는 점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특히 당시 선비들은 속세를 떠나 은일자적(隱逸自適)할 수 있는 선계(仙界)에 대한 동경을 묘사하면서 소를 그 이미지로 부각하고자 했다.
소를 잘 그린 조선시대 화가로는 김제, 이경윤, 김식, 윤두서, 조영석, 김두량, 김홍도, 최북 등이 있다.
김홍도의‘목동귀가’
우리와 가장 친숙한 동물인 소는 근면ㆍ우직ㆍ유유자적을 상징하며, 때로는 복을 불러오고 화를 막아주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김홍도 그림 ‘목동귀가’에서 소는 탈속을 상징하기도 한다. <연합>
김제의 ‘와우’(臥牛), 즉 드러누운 소라는 그림은 간단한 배경에 한가로이 꼬리를 늘어뜨리고 엎드린 어미 소를 포착했으며 그의 또 다른 ‘황우’(黃牛) 그림에서 황우는 살이 찐 뒷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이경윤의 ‘기우취적’이란 작품은 중앙에 두 마리 어미 소가 걸어가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앞선 소가 뒤를 돌아보는 장면이 마치 뒤따르는 소와 대화하는 듯한 표정이다. 뒤쪽 어미소 등에는 웃통을 벗은 더벅머리 목동이 올라 타고는 피리를 분다. 아마 속세를 초탈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자 했을 것이다.
김식(1579-1662)의 작품 ‘고목우’와 ‘수하모우’, 그리고 조영석의 ‘소그림’은 젖을 먹는 송아지와 어미 소를 소재로 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에게 소를 탄다는 것은 세사(世事)나 권력에 민감하게 굴거나 졸속하지 않는다는 정신적인 의미가 있다. 나아가 권세를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산다는 의미도 아울러 내포했다.
2008년 무자년(戊子年)은 쥐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었을까? 한때는 상아탑에 빗댄 ‘우골탑’이란 말이 대변하듯 우리네 전통사회에서는 어쩌면 삶 그 자체일 정도로 부피가 컸던 소에게는 가장 치욕스런 해였다. 이른바 광우병 파동에 휘말린 소가 2009년 기축년 새해에는 복을 불러오고 화를 막아주는 존재로 다시금 우뚝 서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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