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춤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967년경 경남 마산 이필이 선생님과의 인연부터이다.
어린 마음에 그저 친구들이 하지 않는 특별한 것을 나만이 하고 있다는 자부심 속에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국적인 크고 작은 무용 콩클에 참여하여 상도 많이 받았으며 꼼꼼하신 아버지 덕분에 아직도 여러 상장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던 중 시대적 사회변화의 물결을 타고 카바레 문화가 대두되면서 사회적인 물의(物議)를 빚은 적이 있었다. 그 후부터 나의 춤바람은 그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일었다.
춤 과 무용!
용어에 대해 뜻은 물론 이려니와 그 기본적인 개념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어린 나에게 TV방송의 가정 파국을 이룬 카바레 춤바람에 대한 뉴스는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누구든 “너 춤추러 가니?”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던 것 같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러한 춤과 내가 배우는 춤은 다르다고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이화여대무용과 3학년 때까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생각하면 춤은 그저 춤일 뿐이고 각 문화권의 민속적 특성을 안고 발생된 여러 춤들 중 하나인 것을...
요즈음 한국의 7-80대 나이트클럽이라는 장소 명칭이 무도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 같다. 이 무도 라는 용어는 신문화 사조의 개화운동이 한창이었던 시기인 1900년대 초반, 일본 영문학자에 의해 춤과 무(舞)라는 용어를 대신하여 ‘수무족도(手舞足蹈)’-즉 손을 올려 휘젓고 발로 땅을 박차고 뛴다-에서 연루된 “도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다가 다시 ‘무도’라는 용어로 바뀐 것이며, 또한 그때의 이 도무나 무도의 범위는 당시 한국 내에서 행 해지고 있는 우리의 전통 무용 과 신무용(전통 무용을 간략하게 개작한 춤), 그리고 그간 국내로 유입되어 온 다른 러시아, 유럽, 일본 등의 새로운 형식의 춤과 사교춤까지를 모두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후 해외 무용 소식이 국내로 끊임없이 전달되고 외국 각종 무용이 소개되면서 예술적 춤은 ‘무용’ 비예술적 춤은 ‘무도’라고 나누어 부르게 되었다.
무도면 어떻고 무용이면 어떤가.
춤이든 무도든 무용이든 그 자체는 그대로 있는 것이고 그것을 행위하는 이들의 목적에 의해 그 개념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춤을 추는 사람 또는 춤을 가르치는사람, 혹은 춤을 배우는사람 모두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할 것이다.
본인이 주최코자 하는 파티의 개인기를 익히고자 함인지, 건강을 위한 율동을 배우고자 함인지, 그렇지 않으면 배워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자 함인지, 그 목적이 분명해야 배우는 과정도 효율적이겠으며 가르치는 사람도 그 목적에 따른 방법이 분명해질 것이다.
이러한 목적이 불분명함에 따른 비효율성은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 열심히는 하여도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에 이를 것이다.
이러한 경우를 가끔 한번씩 경험하였기에 일찍부터 춤바람난 사람인 내가 관심있는 여러분께 안내자로써 피력하고자 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목적이 분명한 춤바람을 원하고 나 또한 삶 속에 춤-(호흡의 춤, 동작의 행위가 아닌 심장 깊숙이에서 분출되는 내면적 표현을 위한 춤, 나만의 특징이자 한국적인 특징을 찾아 느낄 수 있는 춤)-을 위한 춤 바람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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