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패스처 대안학교 교사 샌드라 조씨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꿈만 같았던 대학입학이 현실이 되던 날, 마음 속 깊이 다짐했다.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어 ‘나 같은’ 학생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선물하고 싶다고. 청소년 센터 ‘그린패스처’(대표 김기웅 목사)가 운영하는 대안학교 ‘컬티베이션 아카데미’ 교사인 샌드라 조(25)씨는 2009년 ‘그린패스처’와 함께 새로운 10년을 시작한다. 그린패스처와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11년째. 지난 10년간 조씨를 표현하는 단어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학생에서 교사로 바뀌었다. 또 다른 10년 역시 ‘우리 학생’들이 행복해 지는 일을 위해 변함없이 노력할 것이다.
10여년전 아픔 간직한 학생서 이젠 스승으로
“나같은 사람 도우려 다시 오겠다” 약속 지켜
지난 98년 ‘컬티베이션 아카데미’ 9학년으로 입학한 조씨는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절망 속의 청소년이었다. LA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를 따라 하와이로 갔다. 청소년기, 어머니와 갈등이 심해지며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플룻을 팔아 LA행 비행기표를 샀다. LA에 살고 있던 친오빠와 극적으로 재회했으나 ‘독립’이란 단어를 책임지기에 열네살은 너무 어렸다.
학업만은 이어가고 싶었다. 낮엔 공부하고 밤엔 마켓이나 학원, 식당 등에서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대학진학’은 여전히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다. 돈도, 실력도 부족했다. 대신 조씨에게는 자신을 믿어주고 힘이 되어 주는 컬티베이션 아카데미 선생님들이 있었다. 선생님들의 과외공부와 후원 덕분에 5개 학교 중 4곳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그 때의 감격이란.
“제이 리, 캐롤 김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꿈도 없고, 삶도 더 힘들어졌을 거에요. 저는 이 곳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이룰 수 있고, 그 때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배웠어요. 꼭 다시 돌아와서 학생들을 도와주겠다고 다짐했어요.”
칼스테이트 노스리지에서 생물학과 유아교육을 전공한 조씨는 대학 때는 자원봉사자로, 그리고 지난 2003년부터는 ‘컬티베이션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자리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이 꼭 자신의 모습 같아 만감이 교차한다.
꿈이 없던 학생들이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싶다며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할 때, 그녀의 선생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도 방과 후 시간을 할애해 공부를 도와준다. 그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샌드라 선생님이 우리에게 희망이 됐다”고. “선생님처럼 다시 그린패스처로 돌아와 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그 때까지 그린패스처에 남아있고 싶다는 조씨는 “아이들이 웃을 때, 그들의 꿈이 이뤄질 때 가장 행복해요. 아이들이 집안문제나 여러 가지로 힘들어 하지만 도와줄 수 있고, 옆에 있어 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2009년, 우리 아이들이 희망을 갖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면서 밝게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정말 아름다웠다.
<김동희 기자>
그린패스처의 대안학교 ‘컬티베이션 아카데미’ 샌드라 조 교사(가운데)가 스캇 한(왼쪽) 교사, 졸업생 필립 구씨와 함께 수업 준비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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