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저녁 8시 15분, 늦은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먼저 앞치마를 입고 냉장고를 열어 무슨 재료가 있는지 확인하며 무얼할 지 마음을 정한다. 그전 같으면 냉장고 야채칸을 가득 채운 여러 가지 채소들과 냉동칸의 재료들을 보고 또 보며 이걸 할까 저걸 할까 고민할텐데 요즘은 깨끗하도록 텅빈 냉장고가 이런 고민을 할 필요없게 해준다.
늦게 시작한 일, 아니 창업으로 지난 몇 달간 나의 생활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전업주부로 살며 집안 일만으로도 바쁘다 바뻐하던 내가 요즘은 간신히 빨래 돌리고 어쩌다 밥이나 해먹는 거의 집안 일 팽개친 수준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치며 생각하니 참 오랫만에 앞치마를 입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분주해 요근래 부엌에서 잠깐씩 일하는 동안에는 앞치마를 입지 않은 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돌이켜보니 지난 이십여년간 나는 살림을 하며 유독 앞치마를 챙겨 입었던 것 같다. 이른 아침 아이들의 등교 전 아침식사를 준비하려고 부엌으로 갈 때까지는 몽롱하다가도 앞치마의 끈을 묶으며 정신도 마음도 온전히 잠에서 깨어 하루를 시작할 채비를 갖추곤 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마치 앞치마만 입으면 앞치마의 마법에 걸린 듯 내 손은 분주히 일거리를 찾아 움직이며 집안 구석구석에 깔끔한 온기를 불어 넣었고 가족들은 그 온기를 누리며 가정이라는 보금자리에서 쉼을 얻고 살아왔다.
그러나 때로는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부엌에서, 아니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적도 종종 있었다. 내 인생이 이렇게 살다 끝나나 하는 생각을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생각이 들면 마치 앞치마 끈이 나를 묶는 굴레인 양 느껴져 벗어 던지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이 늦은 시간에 피곤한 몸으로 식사를 준비하며 이렇게 고향에 돌아온 듯 마음이 푸근하니 무슨 조홧속인지…
지난 세월동안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때때로 초대한 이웃들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하고 집안을 깔끔히 단장하며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나는 안다. 나의 정성과 수고로 즐거워 하던 이들의 모습에 내가 행복했고 더 좋은 것으로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늘 분주했던 시간이었다.
지난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창업을 염두에 두고 내가 제일 먼저 구입한 것이 앞치마였다. 집에서가 아닌 사업장에서 입기에 적당하겠다 싶은 것을 보았을 때 당시에는 언제 어디서 시작하게 될 지도 막연한 사업을 위해 먼저 앞치마부터 장만한 것이다. 음식이 아닌 책을 다루는 일이지만 유니폼이 아니면 앞치마라도 갖추는 것이 좋겠다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일을 시작한 지 3주째, 매일 아침 문열 채비를 마치고 나면 앞치마를 입고 마음의 끈을 동인다. 오늘 하루도 이 사업장이 손님들의 필요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나의 섬김으로 인해 드나드는 발길들이 복되고 기쁘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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