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는 댓가가 필요하다. 우리 집 우드스토브로 두 번째 겨울을 나고 있는 나의 결론이다. 영화에서 볼 때는 좋았다. 하얗게 눈 내린 산속, 고립돼 있으면서도 아늑한 산장, 아름다운 남녀……. 그리고 장작이 타는 우드스토브는 영화 속 로맨스의 화룡정점 아니었던가? 그러나, 고유가 시대에 단지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이 우드스토브가 생활이 돼버린 순간 낭만은 끝나버린다.
일단 장작을 준비하는 것부터가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다. 우선 산림청에서 벌채 허가권을 사서 지정해준 위치에서 죽은 나무만을 엄선(?)해야 한다. 다음 전기톱으로 김밥 썰듯이 나무를 베어서 일단 집으로 싣고 온다. 우리 동네 농담으로 나무 벌채하는 일을 위도우 메이커(widow maker)라고 부른다. 빈번하게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남편을 나무꾼으로 산에 보낸 아내라면 기도부터 하고 볼일이다. 싣고 온 나무는 도끼로 쪼개거나 여유가 된다면 스플리터(splitter)라는 기계로 쪼개 장작을 만든다. 그런 다음 차곡차곡 쌓아놔야 한다. 나무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몇 달간 미리 말려 두지 않으면 연기가 심하게 나고 불이 잘 붙지도, 타지도 않게 된다. 난방용 목재로 최고로 치는 것은 연기가 적고 오래 타고 화력이 좋은 참나무이고, 소나무 종류는 중간, 불은 잘 붙지만 금세 타는 재질이 연한 레드우드 종은 하품으로 친다. 예전에 우리 모친께서 겨울되기 전에 연탄을 사서 쌓아 놓으시곤 흐뭇하게 바라보시곤 했는데 나무를 해다가 쌓아놓고 보는 내 심정도 비슷할 거 같다. 동네를 돌다가 나무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집 앞을 지날 때면 으레 한두 번 정도는 눈길이 더 가고, 우리 집에 나무가 점점 떨어져 갈 때가 되면 침을 삼키면서 쳐다보게 되었다.
이렇게 장작이 준비가 되면 우드스토브에 나무를 격자로 쌓고 불을 붙인다. 불의 특성은 참 이상해서 장작 사이를 너무 떨어뜨려도 불이 잘 붙지 않고 반대로 너무 붙여나서 공기가 드나 들 틈이 없으면 쉬이 꺼지고 만다. 처음엔 이런 원리를 잘 몰라서 불을 붙이는데 참 애를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불을 붙이면 나무 먹는 하마인 우리 집 우드스토브는 부지런히 나무를 들여놔 주지 않으면 금세 나무를 살라먹고 시커먼 재만 내놓는다. 그러면 일찌감치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될 가망을 접은 아줌마는 재가 루를 마셔가며 치워야 한다. 게다가 굴뚝이라도 막히면 재난이 따로 없다. 메케해 지는 집안 공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막힌 연통에 불이 붙기라도 하면 집을 태워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작을 태우는 시간들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무를 잘 배열해놓고 불이 붙길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불길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가고, 불이 내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리면서 정점으로 치달아 가고, 조금씩 사그라져 재로 변해버리는 그 모든 시간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승전결이 뚜렷한 드라마 한편을 다 본 기분이 돼 버린다. 그러다 가끔 거기서 우리네 인생 모습도 보고,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연탄재는 아니지만 ‘누구에게 저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반성도 하게 된다. 내가 살아온 생애보다 갑절이나 더 산, 나무들을 태우면서 ‘그네들이 내게 전해준 온기만큼은 잘 살아야지, 더 잘해 봐야지’……. 새해에는 좀 더 나아지기를, 장작을 나르며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며 그렇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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