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잊어버린 것들을 회복하고 싶어, 아니 내가 잊어버린 것들과 어머니를 잃은 가슴아픔을 달래기 위해 붓을 들어 기억을 더듬으면서 나는 어머니상의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즐겨 입으시던 옷들의 섬유들 모시, 삼베, 뉴똥, 양단, 벨벳 등의 자연섬유, 또한 철따라 섬유들이 달라지는 것들을 상상하면서 7 남매와 건축가이신 아버지의 뒷바라지와 젊어서는 ‘층층시하 시집살이’ 나는 아직도 확실히 그 뜻을 모르지만 하셨다던 어머니, 그러나 ‘멋’을 좋아하셨던 어머니!
그래서 페인팅을 시작했으며 내 마음을 달래며 하나 하나 유화는 엮어져가고 있지만... 나는 어머니의 인생의 끝에 한마디의 전화도, 그리고 보지도 못한 게 내가 미국에서 살기 때문에 상처로 남았으며, 한국을 떠나올 때 김포공항에서 어머니와의 헤어짐이 5년후에 돌아온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이 29여년을 두고 살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는 페인팅을 하면서 계속해서 감정이 솟구치며, 우리가 이렇게 광대한 태평양이 이별의 아픔이 될줄이야 몰랐으며 큰 딸로서 남자동생 다섯이라 서운한 마음이 더한 것 같다.
그래서 같은 하늘아래서 살아오지 못한 것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동안 몇번 한국의 방문에 몇일 정도의 만남으로, 또는 헤아릴 수 없는 전화통화는 했지만 이 모든 것이 오직 임시인 것 같아 어머니도 나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 86세의 연세로 골다공증에 걸려 몇년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뼈가 약해지니까 넘어지셔서 다리 수술을 받은 후 회복을 못하시고, 나는 그때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미국 거주에의 일을 버리고 떠나기가, 그래서 차일 피일 미루다가, 그래도 어머니 목소리는 건강하셨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기 3일 전 전화에 1달만 기다리면 1 달 어머니와 같이 살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어머니는 한달을 기다리시지 못하고 딸 얼굴도 마지막으로 보지도 못하고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셨다.
전화에 항상 고통이 심하셔서 빨리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시더니 그때마다 나는 내 온지식을 동원하여 땅속은 얼음같이 차고 영원히 잠들텐데 어머니가 심으 놓으신 예쁜 꽃들과 무화과 나무, 앵두나무, 석유나무들도 창문을 열어놓고 보시고... 새들의 노래소리도 들으시고...... 달래기도 하고, 농담도 하고, 화도 내어서 어머니의 마음을 바꾸곤 했다. 사람들은 나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머니의 생이 길고도 짧았으리라
세상을 떠나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살아오는 동안은 길고도 길었으리! 귀한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할머니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마지막을 하셨지만, 나의 온 머리는 애틋하기만 하니... 어머니의 여생을 상상하면서 그 시대의 멋을 엮어가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서 나의 작품이 부드럽게 진행되고 있다. 나는 이야기한다 어머니, 처음의 약속은 제가 지키지 못했지만 나중의 약속은 어머니가 지키지 못했습니다라고... 또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명언과 같이 어머니 멋을 나의 예술에 영원히 세상에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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