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오천원이면 동네미용실에서 아이의 머릿칼를 잘랐건만 미국에오니 이발비가 너무 비쌉니다. 게다가 팁까지 주어야 하니 요즘 같은 가정경제 형편에 부담이 크지요. 자~ 돈 몇 푼(말이 몇 푼이지 사실 큽니다)아껴보려 화장실 바닥 빼곡히 종이와 비닐봉지를 깔고 달가워하지 않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의자에 앉혔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도 내 아이의 머릿칼을 엄마가 직접 손질해준다는 나름의 즐거움으로 1년에 한번쯤은 집에서 손질해줬던 터라 사실 뭐 그리 크게 걱정하진 않았습니다.
커다란 수건을 두르고 가위를 집어 들어 이발을 시작하는데 아뿔싸~ 너무 오래쓰지 않아 무뎌질대로 무뎌진 가위날이 문제였습니다. 할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천원짜리 일명 문방구 가위를 꺼내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잘 듣더군요. 그런데 이번엔 네살배기 아들녀석이 문제였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조용히 머릴 내어맡기던 이녀석이 고새 머리 좀 굵어졌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합니다. 가위탓인지 뭔가가 맘에 안들어 발을 동동 굴러대던 아들녀석 탓인지 한쪽을 자르니 다른 한쪽이 짧아지고 또 반대쪽을 자르니 다른쪽이 짧아져있고…갑자기 신혼 때 물과 간장을 번갈아 넣다가 찌개가 국으로 변한 일이 불현듯 스쳐지나가더군요. 안그래도 슬슬 걱정이 되던차에 아이는 몸을 꼬아대며 입이 대자로 나와서는 아무래도 이상하게 자른 것 같으니 엄마 가서 거울 좀 가져와보랍니다.
조금만 참으면 아이스크림이다~하며 서둘러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앞머리가 예상보다 좀 많이 짧아지긴했지만 그래도 엄마표치고는 나름 훌륭하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거울을 보고 난 이녀석의 반응이 가관입니다. 자기는 앞으로 반드시 미용실에 가서 자르겠답니다. 평소 저희 아이는 모자 쓰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햇살이 강한 날에는 프리스쿨 가는 길에 모자를 쓰네마네 실갱이를 벌이곤 합니다. 그런 녀석이 글쎄 다음날에는 비가 오는데도 모자를 쓰고 간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아들녀석이 모자를 고집할 것 같아 살짝 야속한 마음마저 듭니다.
그래도 고슴도치 부모 눈엔 그런 아들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머리 자르고 나니 더 이쁘네 귀엽네 부부만의 대화가 이어졌지요. 아이 머리도 잘 잘랐으니 다음주엔 당신 머리도 손질해줄게~라고 말하니 즐거웠던 분위기는 간데없고 갑자기 흐르는 정적 속에 남편의 안색이 단번에 바뀝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머리를 꼭 한번 길러보고 싶었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 한국에선 세달에 두번만 자르라고 할 때도 자긴 긴머리는 싫다고 한달도 채 안되어 미용실에 가며 짧은 머리를 고수하던 사람이 장발선호라니요? 살짝 눈을 흘기며 그래 그럼. 어디 한번 쭈욱 길러봐! 라고하니 아침마다 샤워 후 머리손질하는 남편의 얼굴에 근심이 서립니다. 제가 봐도 머리숱이 별로 없는 남편에게 긴머리란 당췌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와이프 맘상할까 선뜻 미용실 간다는 말 못하고 있는 남편이 맘으론 고맙습니다.
주말에 신나게 놀고 오늘은 유치원 가고싶지 않다며 떼쓰는 아들녀석. 지난 주말에 약속한 창고정리를 아직도 미루고 있는 남편에게 잔소리 대신 아들녀석 머릿칼 잘라주었을 때 사용한 빨강 문방구 가위를 한번 치켜들어줍니다. 이미 쌩~하니 빛의 속도로 사라진 두 남자. 당분간은 입 아픈 잔소리 대신 이 가위가 효자노릇을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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