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캘리포니아지만 고도가 높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한 자락 끝이어서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온다. 올해는 겨울 가뭄이 심해서 다들 걱정을 했는데 이번 주에 보란 듯이 며칠 연속으로 폭설이 내렸다. 밤이면 제설차 지나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고 눈 내린 설경을 확인하며 아침을 맞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어찌나 공평한 지 우리 집 이웃집 구별 없이 자동차나 나무도 차별하지 않고 소복이 쌓였다. 한없이 아름다운 눈이지만 아침마다 눈삽을 들고 집 앞 눈을 치우러 나서야 하는 사람한텐 마냥 좋을 리가 없다. 이사 온 첫해엔 눈 만난 강아지 마냥 좋아만 하다가 눈을 제 때에 못 치워 눈이 얼은 후 결국 도끼로 눈을 깨는 참극(?)까지 벌였다. 작년을 거울삼아 올해는 눈이 쌓일세라 장화 신고 삽을 든 채로 아침마다 눈을 치우로 나선다. 그냥 치우는 게 아니라 요령이 붙어 허리힘을 덜 쓰는 법, 길가로 밀어내는 법, 팔 바꾸기 비법 등 점점 실력이 늘어간다.
눈 삽질에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터득해 나가는 중에 내가 대한민국 여자 중에 눈을 많이 치워 본 상위 일 퍼센트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자동차 광고에서 비롯되어 대한민국 일 퍼센트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원래는 재력을 기준으로 이 구분을 한 것이겠지만, 사실 누구나 어느 분야에서는 일 퍼센트 안에 들 수 있다. 대한민국 인구 사천 육백만의 일 퍼센트는 사십 육만 이니까 무얼 하든 사십 육만 안에만 들면 어느 분야에선가는 일 퍼센트 안에 들어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들은 기상 시간만으로 상위 일 퍼센트가 될 수 있고, 라면을 잘 끓이는 사람들도 그 재주로 일 퍼센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누구는 낚시를 잘해서, 누구는 설거지를 잘해서 또 누구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누구보다도 빨리 보낼 수 있기에 상위 일 퍼센트가 될 수 있다. 돈이 많아야, 공부를 잘해야, 얼굴이 잘생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만으로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 상위 일 퍼센트가 된다.
어쩌면 제각기 서로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을 상위 일 퍼센트니 몇 퍼센트니 하는 통계 안에 가두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일 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기 좋았다’ 하신 이유는 그 나름 각각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웠기 때문이지 특별히 어떤 것들이 더 잘나고 멋있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극심한 경쟁사회에서는 개성대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고 특정 분야의 성공으로만 사람을 평가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행복은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서 온다. 남이 뭐라 건 스스로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갖고 거기서 기쁨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획일화 주류에 휩쓸리지 않고 혼자만의 행복에 웃음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이 눈을 치우는 일이건 아이를 보는 일이건 일상적인 직업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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